심상덕 컬럼

10년째 미혼모 진료를 하면서

junihome 2010. 10. 13. 21:12

저희 병원에서는 10년째 미혼모들의 산전 진료를 무료로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분만도 도왔었는데 여러가지 사정으로 얼마전에 분만실을 폐쇄하였기 때문에 지금은 분만을 돕지는 않습니다.

물론 미혼모들에 대하여 무슨 철저한 사명감이 있어서 무료 진료를 자청하고 나선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다른 의사들이 미혼모 진료를 꺼려서 산전 진료와 분만을 받을 곳이 없다고 해서 저희 병원에서 진료를 맡게 된 것 뿐입니다.

어쩌다 보니 임신이 되었지만 그네들도 어디선가 안전하게 분만을 받을 권리는 보장되어야 한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였습니다.

그렇게 오는 미혼모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비록 지금은 낙태 시술을 하지 않지만 약 1년전까지는 낙태 시술도 했었기 때문에 임신 초기에 방문하는 10대 초반의 미혼모를 보면서 혹은 돈이 없어 낙태를 받지 못한 것 때문에 자신의 처지를 많이 괴로워 하는 중기 이후의 미혼모를 보면서 답답한 마음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일반 산모들보다 관리가 제대로 안되어 여러가지 질병을 가지고 있기도 했고 고위험 요인이 있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사회의 냉대와 외면으로 인한  심적 상처 때문이겠지만 대체로 그들은 다른 사람에 대한 거부감 내지는 반사회적 성향도 있어 보였고 때로는 병원 직원들에 대하여 얼마간은 무례하달까 하는 일도 생기곤 하였습니다.

이런 산모들을 뭐하러 굳이 배려하고 출산을 하도록 도와 주느냐 하고 비난하시는 분들의 말도 전혀 틀린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렇게 제가 가진 편견이든 진실이든 그들에 대하여 가진 생각은 어쩌면 다른 종교인이나 의사들에 비하여 솔직히 부끄러운 자세일 것입니다.

그들을 일반 산모처럼 꼼꼼하게 진찰하지도 못하는 편이며 천성이 그래서인지 살갑게 위로해 주면서 설명하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스스로 위안을 삼는 것은 출산을 하기로 결정한 사람들에 대하여 산부인과 의사인 내가 일정 부분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일단 출산하기로 마음을 먹은 사람들을 사회와 국가가  그리고 산부인과 의사가 함께 도와야 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들의 아이들이 좋지 못한 환경에서 자람으로써 비행 청소년이 되고 또 어쩌면 범죄율을 높이게 된다는 구실을 들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그들을 돕지 않는데 대한 구실일 뿐입니다.

더군다나 낙태율이 높으면 범죄가 줄고 낙태율이 낮으면 범죄가 는다는 얼마전의 보고도  잘못된 통계 적용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본다면 어떤 경우의 생명이든 보호하는 데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소위 낙태를 할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하다고 하는 이유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은 상황에서 미혼모들이 낙태를 해야할 불가피한 상황은 들어 보면 일견 타당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저 자신 그런 많은 미혼모들을 보면서 좀 더 일찍 낙태를 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적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 보면 우리가 흔히 불가피하다고 말하는 여러가지 상황들은 정말 불가피한 것이 아니며 개입하여 해결하는 데 드는 비용과 수고를 피하고 싶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낙태 문제에 있어서는 낙태를 할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 문제이기 보다는 불가피하다고 변명하면서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 정말 문제였습니다.

따라서 미혼모들이 낙태하지 않고 출산하게 된 것은 불가피한 상황을 극복했기 때문이 아니라 불가피하다고 말하는 여러가지 고통과 열악한 환경을 묵묵히 감수하기로  용기를 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미혼모들이 홀로 마주서기로 하는 데 있어 과연 우리 사회와 정부는 그들에게 무엇을 해 주었나요?


낙태를 하지 않고 출산하여 입양을 보내기로 결정한 어느 미혼모가 여러가지로 복잡하고 답답한 자신의 심경을 이야기하면서 "아기를 직접 키우지 못해 미안하고 이런 상황이 괴롭지만 전 제 아기를 죽이지 않고 낳았으니 그래도 아기한테 조금은 덜 미안해요"라고 한 말이 머리를 맴돕니다.

어떤 산모든 고민과 갈등없이 자신의 출산을 마음놓고 소신껏 결정하지 못하고 대단한 용기를 가지고 희생을 각오해야만 출산을 할 수 있는 지금의 현실은 어떻게든 개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2010년 7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