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덕 컬럼

군맹무상(群盲撫象)

junihome 2010. 10. 9. 20:32
무 같은 것, 혹은 씨앗을 켜는 키 같은 것, 아니면 새끼줄 같은 어떤 것이 당신 앞으로 오고 있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물으면 위 묘사로는  그 대상물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상에서 가장 큰 동물이며 긴 코를 가지고 있고 날카로운 상아를 가진 동물이 당신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하면 누구나 쉽게 코끼리를 상상하고 바로 그 자리를 피할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로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이야기가 있다.
불경 중의 하나인 열반경에 군맹무상이라는 타이틀로 장님 여럿이 코끼리를 만져 보고 나서  상아를 만져본 사람은 '무' 같다고 하고 귀를 만져본 사람은 씨앗을 켜는 '키' 같다고 했으며 머리를 만져본 사람은 '돌' 같다고 하고 코를 만져본 사람은 '절굿공이',다리를 만져본 사람은 '널빤지', 배를 만져본 사람은 '항아리', 꼬리를 만져본 사람은 '새끼줄'같다고 말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각각의 장님이 만져 본 코끼리의 모습은 틀린 것이 아니며 나름대로 코끼리의 한 특성을 제대로 묘사를 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각각의 묘사를 다 합쳤다고 해서 코끼리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무나 키 혹은 돌과 같은 것, 아니면 절굿 공이나 널빤지 혹은 항아리와 같은 것이라는 말을 다 모아 보아도 코끼리를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즉 중요한 것은 일부를 보았느냐 아니냐 하는 것 보다는 얼마나 대상물의 중요 특성을 제대로 보았느냐 하는 것이다.
비록 코끼리의 일부를 보았다고 하더라도 새끼줄 같은 어떤 것이라고 본 사람보다는 덩치가 어마어마하게 큰 어떤 움직이는 것이라고 본 사람이  코끼리의 실체를 더 정확하게 파악한 것이다.
사실 우리 모두는 신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현상과 사물의 전체 실체와 역사의 한 순간으로서 현재가 가지는 의미를 겪어 보지 않은 과거와 오지 않은 미래의 관점에서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판단하기란 어려울 수가 있다.
그러나 자신의 위치에서 얼마나 실체에 가깝게 판단했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새끼줄이 달린 어떤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과 덩치가 아주 큰 어떤 움직이는 것이라고 본 사람이 향후 겪을 상황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은 다행히 그 위험한 상황을 피하게 되겠지만 다른 사람은 어쩌면 그 거대한 동물의 발에 밟혀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모 문화 단체의 대표--"인공적인 힘을 빌려야만 호흡할 수 있는 뇌사자를 완전한 생명으로 인정하기 힘들듯이 배 속의 태아도 완전한 생명이라고 보기 힘들다.
완전하지도 않은 태아의 생명을 살리려다 철부지 10대들의 미래가 다 죽는다. 괜히 ‘생명권’ 운운하면서 어린 10대의 창창한 앞날에 물 뿌리지 말고 발목도 잡지 마라."

다함께 여성위원회의 C모씨--"프로라이프 의사회 고발 이후 대부분 산부인과가 낙태 시술을 거부, 여성 상담소에는 시술할 곳을 묻는 절박한 전화가 줄을 잇고 있으며 낙태 시술 비용이 10배 가까이 올랐다는 얘기도 들린다."

한국여성의전화 L모씨--"성폭력 피해자조차 병원에서 입증 서류나 고소장을 요구하는 등 시술을 받기 힘든 상황이다."

모 성 상담소 관계자--"국가의 형벌권만 강화해 낙태를 근절하겠다는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주장은 무면허 시술자에 의한 위험천만한 낙태시술만 증가시킬 뿐 아니라 여성들의 낙태에 대한 의료비만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는 여성의 안전을 위협하고 경제적 부담을 증가시켜 결국 여성의 몸 권리에 대한 침해로 이어질 것이다."

위는 낙태와 관련하여 보도가 된 몇몇 인사의 언급이다.
이런 판단들이 과연 거대한 코끼리를 만져 보고 나서 무 같다거나 혹은 항아리 같다거나 아니면 새끼줄 같다고 말한 장님과 같은 판단인지 아닌지는 여기서 밝히지 않겠다.
그 진실은 이미 지금의 현실에서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지만 보고자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역사가 분명하게 말해 줄 것이다.
사람에 따라 이렇게 보거나 저렇게 보는 낙태라고 하는 현상이 과연 위험할 수도 있는 거대한 동물이었는지 아니면 무시해도 좋을만한 새끼줄 같은 것이었는지.....
 
2010년 7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