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이야기

2013년 10월21일 Facebook 이야기

junihome 2013. 10. 21. 19:37
  • [진짜 여성주의자가 여성에게 - 낙태권 쟁취 투쟁은 완전한 여성해방을 저해한다]

    진짜 여성주의자가 여성에게

    - 낙태권 쟁취 투쟁은 완전한 여성해방을 저해한다 -


    메릴린 콥(Marilyn Kopp)

    2013년 8월 25일

     

    165년 전 뉴욕 주 세니카폴스(Seneca Falls)에서 시작된 미국 여성운동 소신선언문 초안에는 많은 요구사항이 들어있었다. 그러나 이 운동은 하나의 목표로 결합되었는데 그것은 참정권 확보였다. 8월 26일 월요일 여성평등의 날은 75년간의 투쟁 끝에 1920년 수정 헌법 19조에서 여성에게 정치적 참정권을 승인함으로써 이 목표를 이루게 되었음을 기념하는 날이다. 50년 전 베티 프리던의 『여성의 신비』라는 책은 두 번째 여성운동에 불을 붙였고 곧 이어 낙태의 합법화라는 또 다른 요구사항을 촉발하게 되었다. 평등권 투쟁의 관점에서 이 두 가지 입법 요구의 영향을 평가할 때 중요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오늘날 낙태는 여성 권리의 초석으로 여겨진다. 여성 참정권 반대론자와 오늘날 여성 생식의 자유를 부정하고 여성을 아기와 부엌 싱크대에 구속하려는 사람들을 똑같은 사람들로 인식한다. 따라서 미국 여성주의의 창립자들이 만장일치로 낙태를 강력하게 반대했었다는 사실을 아는 현대인이 거의 없다. 수잔 B. 앤서니와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튼의 급진적 여성해방론자 신문인 『혁명(The Revolution)』지에서 낙태를 ‘자녀 살해’, ‘가장 저급하고 역겨운 범죄’, ‘출산 전 살인’, 그리고 ‘영아살해’라고 규탄하였다. 왜 여성평등의 투사들이 이런 기본적인 ‘권리’에 반대했을까? 그 이유는 현대의 낙태반대론자의 주장과 똑같다: 인종과 성별에 관계없이 모든 개인에게 기본적 인간권리와 존엄성의 권리가 주어지며 이 권리들은 다른 이들에 의해 빼앗길 수 없다는 것이다. 스탠튼은 1873년에 다음과 같이 저술했다. “우리가 여성이 소유물로 다뤄진다고 여기면서, 자신은 아이들을 소유물로 다루고, 낙태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하여 아이들을 처리하는 것은 모멸스러운 것이다.” 초기 여성해방론자들의 낙태반대의 주장은 단순히 낙태는 나쁜 것이므로 반대한다는 수사적인 표현, 그 이상의 것이었다. 낙태의 죄악을 세상에서 없애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원인인 ‘여성에 대한 사회적 억압’을 해결해야 한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자유연애 지지자이며 첫 여성 대통령 후보였던 빅토리아 우드헐은 1875년 다음과 같이 저술했다: “자신이 자유로운 여성임을 아는 이들은 원하지 않는 아이를 임신하지 않을 것이며, 출생 전에 아이를 살해하는 것 또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낙태는 여성억압에 대한 해결책이 아닌 여성억압의 징후로 인식되었다. 그들이 바란 것은 낙태가 없어지는 것이었지 낙태가 폭넓게 용납되는 것이 아니었다.

     

    1960년대 남성들이 사회적으로 많은 기회를 가질 때 자녀양육에 대해 부당한 짐을 지는 것, 불공평한 급료지급, 고용차별, 직장 내 성희롱, 가정폭력, 법적/재정적 권리의 제한과 같은 전통적인 사회문제들이 여전히 여성들로 하여금 자신의 최대역량을 발휘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여성의 선거권 쟁취가 ‘여성혁명운동의 속임수’로까지 조롱을 받는데, 여성이 선거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런 사회문제들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남편들만큼이나 낮은 투표율로 투표했고 따라서 동등한 대의권을 가지기에는 여전히 갈 길이 멀었다. 낙태 합법화 운동은 이러한 여성의 뒤처짐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여성에게 선거권이 주어졌어도 여성 참정권 지지자들이 기대했던 모든 목표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성의 선거권이 목표의 가치를 손상시키지는 않았다. 정반대로 낙태는 여성해방론자들이 평등을 위해 싸우도록 만든 가치들과 모순되는 것이었다. 낙태를 강조할수록 진정한 개혁의 과정은 방해를 받고 있다.

     

    낙태는 여성들을 해방시키는 대신, 남성들을 해방시켰다. 낙태가 가능해짐으로 말미암아 배우자와 자녀에 대한 의무는 선택이 되었고 자녀학대와 빈곤의 여성화는 확대되었으며, 자녀양육의 짐이 도리어 여성에게로 더 많이 옮겨가게 되었다. 자녀양육과 직장생활의 결합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사회가 변화해야 하는데, 낙태가 가능하기 때문에 사회가 여성의 실질적인 필요를 채우는 책임을 면제받은 꼴이 된 것이다.

     

    프로초이스 여성들은 여성주의의 핵심 가치를 포기하고, 통제와 지배를 통한 권력추구, 개인의 사생활을 핑계로 한 폭력의 용납,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살인이라는 최악의 가부장적인 기준을 채용했다. 평등권을 가지기 위해서는 낙태가 필요하다고 주장함으로써 전통적인 남성 세계관을 지니게 되었다. 인간됨을 남성다워짐으로 등치했고 여성의 생식능력을 거부하게 되었다. 여성은 근본적으로 자궁이 없어야만 남성처럼 임신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자신의 자궁에 폭력을 가하는 낙태에 기댈 수밖에 없다.

     

    편협한 시각이 아니라 종합적인 시각을 지닌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결집한 이유를 재평가해보자. 용감했던 선조 어머니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그들의 지혜를 주목하자. 낙태는 우리의 목표에 이를 수 없게 하였으므로, 정의와 비폭력이라는 여성해방론자의 진정한 이상을 나타내는 다른 요소들을 해결해 나가도록 하자. 이렇게 해야만 여성이 존경받을 만하게 될 것이다.

    메릴린 코프는 ‘생명을 위한 여성주의자들’ 회원으로 미국 클리블랜드에 거주하고 있다.

     

     

    [번역: 이임자 낙태반대운동연합 전문번역위원, 일부 의역 포함/ 감수: 김현철]


    페미니스트라고 해서 모두가 낙태 지지자들이 아니다. 페미니스트 중에는 프로라이프 페미니스트와 프로초이스 페미니스트가 있다. 누가 진짜 여성을 위한 여성주의자인지는 미국의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어느 쪽이 정치적인 집단인지도 분별할 수 있다. - 김현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