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페이스북 친구 가운데 최우아 님이라고 있습니다. 그 분이 자주 육아일기를 올리는데 최근의 글을 하나 옮깁니다. 읽어보시고 생각하는 데 도움을 얻기 바랍니다.
"아기낳고 일하는 애엄마들이 이해가안가요.
이렇게 이쁜아기를두고 어떻게 일을 가죠?언니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엄마가 되는 일을 기대하며 그것을 생애 큰 과업으로 생각하는 후배가 나에게 물었다. 질문을 듣는 순간 약간의 현기증이 났다.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니 후배는 나야말로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기대하는것 같았다.
이십대 초반의 그녀에게 나의 생각을 들려줄까하다가 정원이를 돌보는척 얼버무렸다.
...
삶을 단순하게 가지치기하며 사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로운 이유는 삶이 때로는 복잡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인생에선 어떤일도 일어날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젊은 상담사들을 위한 공개 수퍼비전에서 들은 의미심장한 한마디다. 상담사들이 접하는 거의 모든 이야기들은 고통, 우울, 절망, 좌절, 상실, 분노 등등의 이야기들이다.
삶은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삶은 그 복잡한 성격으로 우리로 하여금 인생학교에 등록시키고 삶을 겸허히 배우라고 말한다.
나의 어릴적 오랜 꿈은 발레리나였는데
난 지금 상담분야에 있다. 그리고 상담분야 전에는 모델일로 돈을 벌었다. 내뜻으로는 되지않던 참으로 복잡한 진로결정의 과정이었다.
요즘같이 고물가 시대에 엄마들은 생계를 위해 일터로 나간다.
조금이라도 가정경제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른 동기로는 사회적 성취와 자아실현욕구를 위해서다.
경력이 아깝기도 하고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여성이다.
그리고 자신이 원해서 자발적으로 전업주부가 되기도 하고
타의로 전업주부가 되기도 한다.
각자 자신의 위치와 자리를 감사하고 긍정하며 즐거운 마음을가진다면 아무런 문제가없다.
지금 나는 일하는 엄마와 전업엄마,
그 중간지대에 머무르고 있는 엄마다.
한학기 수료 후 논문쓰고 졸업하는 것이 목표인 대학원생엄마,
박사과정 진학이 간절한 공부하는 엄마다.
그래서 학기중 일때는 소논문과 밀려드는 과제, 읽어야할 자료에 떠밀려 일하는 엄마가 되고 방학 중 일때는 전업엄마가 된다. 학기 중일때는 정원이를 안고 서서 자료를 읽고 새벽에 과제를 하는 등 정신력과 기도빨로 버텼다.
일주일에 이틀 학교를 가려고 양가어머니께 정원이를 맡기고
"정원아, 오늘도 잘 부탁해요. 엄마 열심히 공부하고 올게요."
돌아와서는 누워만있는 아기에게 넙죽 업드려 껴안으며
"정원아 미안하고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일주일에 고작 이틀 학교가며 마음이 힘들었는데
일하는 엄마들은 오죽할까. 하는 생각이들었다.
수업하나를 들을 때마다 정원이에게 짧은 편지를 썼다.
"정원아, 엄마도와주어고마워. 너에게 같은 여자로써 인생 선배인데...엄마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모습 보여줄게.
엄마의 배움과 정원이가 배려해준 이시간을 의미있게 사용할게.
여자의 삶은 특히나 많은 역할과 책임감이 공존한단다. 엄마가 너에게 모범이 되었으면해요."
나는 죄책감을 나 스스로 다루는 법과 미안한 마음을 글로 적었고 정원이가 자라면 읽어주고 이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싶다.
전업엄마로 지내면서는 나의 자아실현욕구를 잘 다스리고
나 스스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려고 노력한다.
전업엄마는 자신만의 시간을 만들고 확보할줄알아야한다.
무엇보다 정원이에게 올인하지않고 적정선을 지키려고 신경쓴다. 과도한 사랑은 집착과 영양가없는 잔소리를 낳는다.
무리한 희생은 댓가를 바라지만 자발적 헌신은 아이의 웃음소리만으로도 감사한다.
그리고 사회는 안과 밖으로 완벽한 여성을 이상화시키고
수많은 엄마들은 부족함을 내부귀인을 하며 자책한다.
내가 느끼기에 더 애달픈 일은
사회가 만든 그 여성상에 맞춰 사고하는 여성들이
서로의 적이 되어버린 다는 것이다.
일하는 엄마는 집에서 편하게 놀고먹는다며 전업엄마를 비아냥거리고 전업엄마는 차가운 눈초리로 가정을 돌보지 않는다며 일하는 엄마를 비난한다.
여성잡지에는 종종 그런 기사들이 올라오곤 한다.
후배의 질문에는 이런 뉘앙스가 담겨있었다.
이제 더이상 일하는 엄마와 전업엄마는 서로의 적이되지 말아야한다. 우리는 서로를 격려하며 연대하고 유대해서
엄마라는 존재를 사회에 제대로 알리고 우리 목소리를 올바르게 내야한다.
일하는 엄마는 사회가 아이들을 잘 맡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도록, 전업엄마는 사회에서 언제든 다시 일할수있도록말이다.
우리가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격려할 때 어떤 혼돈도없이 사회가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정책을 개선하고 발전시킬 것이다.
전업엄마는 일하는 엄마를 격려해야한다.
끝까지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켜가고있는 여성들에게 고마움을 전해야한다. 내딸 정원이가 훗날 사회에서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하고 우리의 딸들이 지금 이시대 여성보다 조금이라도 평등하게 산다면 그 덕은 일하는 엄마들이 사회에서 자리를 지켰기때문이다.
일하는엄마도 전업엄마를 격려해야한다.
가정은 곧 사회다. 그곳에서 애쓰고 수고하는 엄마들이 자녀들의 독립후 사회에 두려움없이 재기할수있도록 응원해야한다. 전업엄마들이 좋은 자녀교육정보를 공유하듯 일하는엄마도 자신의 경험을 전업엄마에게 조언할 수있다.
우리가 분열되어서는 사회에 한 목소리로
우리의 이야기를 제대로 전할 수없다.
일하는 엄마도 대단하고 전업엄마도 대단하다.
중간지대의 이 엄마는 양쪽엄마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짝짝짝.
여성의 삶 속, 서로의 친구가 되기를.
동시대를 사는 여성으로 시대의 동반자가 되기를
이렇게 이쁜아기를두고 어떻게 일을 가죠?언니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엄마가 되는 일을 기대하며 그것을 생애 큰 과업으로 생각하는 후배가 나에게 물었다. 질문을 듣는 순간 약간의 현기증이 났다.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니 후배는 나야말로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기대하는것 같았다.
이십대 초반의 그녀에게 나의 생각을 들려줄까하다가 정원이를 돌보는척 얼버무렸다.
...
삶을 단순하게 가지치기하며 사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로운 이유는 삶이 때로는 복잡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인생에선 어떤일도 일어날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젊은 상담사들을 위한 공개 수퍼비전에서 들은 의미심장한 한마디다. 상담사들이 접하는 거의 모든 이야기들은 고통, 우울, 절망, 좌절, 상실, 분노 등등의 이야기들이다.
삶은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삶은 그 복잡한 성격으로 우리로 하여금 인생학교에 등록시키고 삶을 겸허히 배우라고 말한다.
나의 어릴적 오랜 꿈은 발레리나였는데
난 지금 상담분야에 있다. 그리고 상담분야 전에는 모델일로 돈을 벌었다. 내뜻으로는 되지않던 참으로 복잡한 진로결정의 과정이었다.
요즘같이 고물가 시대에 엄마들은 생계를 위해 일터로 나간다.
조금이라도 가정경제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른 동기로는 사회적 성취와 자아실현욕구를 위해서다.
경력이 아깝기도 하고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여성이다.
그리고 자신이 원해서 자발적으로 전업주부가 되기도 하고
타의로 전업주부가 되기도 한다.
각자 자신의 위치와 자리를 감사하고 긍정하며 즐거운 마음을가진다면 아무런 문제가없다.
지금 나는 일하는 엄마와 전업엄마,
그 중간지대에 머무르고 있는 엄마다.
한학기 수료 후 논문쓰고 졸업하는 것이 목표인 대학원생엄마,
박사과정 진학이 간절한 공부하는 엄마다.
그래서 학기중 일때는 소논문과 밀려드는 과제, 읽어야할 자료에 떠밀려 일하는 엄마가 되고 방학 중 일때는 전업엄마가 된다. 학기 중일때는 정원이를 안고 서서 자료를 읽고 새벽에 과제를 하는 등 정신력과 기도빨로 버텼다.
일주일에 이틀 학교를 가려고 양가어머니께 정원이를 맡기고
"정원아, 오늘도 잘 부탁해요. 엄마 열심히 공부하고 올게요."
돌아와서는 누워만있는 아기에게 넙죽 업드려 껴안으며
"정원아 미안하고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일주일에 고작 이틀 학교가며 마음이 힘들었는데
일하는 엄마들은 오죽할까. 하는 생각이들었다.
수업하나를 들을 때마다 정원이에게 짧은 편지를 썼다.
"정원아, 엄마도와주어고마워. 너에게 같은 여자로써 인생 선배인데...엄마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모습 보여줄게.
엄마의 배움과 정원이가 배려해준 이시간을 의미있게 사용할게.
여자의 삶은 특히나 많은 역할과 책임감이 공존한단다. 엄마가 너에게 모범이 되었으면해요."
나는 죄책감을 나 스스로 다루는 법과 미안한 마음을 글로 적었고 정원이가 자라면 읽어주고 이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싶다.
전업엄마로 지내면서는 나의 자아실현욕구를 잘 다스리고
나 스스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려고 노력한다.
전업엄마는 자신만의 시간을 만들고 확보할줄알아야한다.
무엇보다 정원이에게 올인하지않고 적정선을 지키려고 신경쓴다. 과도한 사랑은 집착과 영양가없는 잔소리를 낳는다.
무리한 희생은 댓가를 바라지만 자발적 헌신은 아이의 웃음소리만으로도 감사한다.
그리고 사회는 안과 밖으로 완벽한 여성을 이상화시키고
수많은 엄마들은 부족함을 내부귀인을 하며 자책한다.
내가 느끼기에 더 애달픈 일은
사회가 만든 그 여성상에 맞춰 사고하는 여성들이
서로의 적이 되어버린 다는 것이다.
일하는 엄마는 집에서 편하게 놀고먹는다며 전업엄마를 비아냥거리고 전업엄마는 차가운 눈초리로 가정을 돌보지 않는다며 일하는 엄마를 비난한다.
여성잡지에는 종종 그런 기사들이 올라오곤 한다.
후배의 질문에는 이런 뉘앙스가 담겨있었다.
이제 더이상 일하는 엄마와 전업엄마는 서로의 적이되지 말아야한다. 우리는 서로를 격려하며 연대하고 유대해서
엄마라는 존재를 사회에 제대로 알리고 우리 목소리를 올바르게 내야한다.
일하는 엄마는 사회가 아이들을 잘 맡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도록, 전업엄마는 사회에서 언제든 다시 일할수있도록말이다.
우리가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격려할 때 어떤 혼돈도없이 사회가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정책을 개선하고 발전시킬 것이다.
전업엄마는 일하는 엄마를 격려해야한다.
끝까지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켜가고있는 여성들에게 고마움을 전해야한다. 내딸 정원이가 훗날 사회에서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하고 우리의 딸들이 지금 이시대 여성보다 조금이라도 평등하게 산다면 그 덕은 일하는 엄마들이 사회에서 자리를 지켰기때문이다.
일하는엄마도 전업엄마를 격려해야한다.
가정은 곧 사회다. 그곳에서 애쓰고 수고하는 엄마들이 자녀들의 독립후 사회에 두려움없이 재기할수있도록 응원해야한다. 전업엄마들이 좋은 자녀교육정보를 공유하듯 일하는엄마도 자신의 경험을 전업엄마에게 조언할 수있다.
우리가 분열되어서는 사회에 한 목소리로
우리의 이야기를 제대로 전할 수없다.
일하는 엄마도 대단하고 전업엄마도 대단하다.
중간지대의 이 엄마는 양쪽엄마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짝짝짝.
여성의 삶 속, 서로의 친구가 되기를.
동시대를 사는 여성으로 시대의 동반자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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