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덕 컬럼 2

낙태 문제에서 경계해야 할 두 가지 편견

junihome 2012. 6. 6. 18:25

심상덕

2012년 6월 5일

 

낙태권 쟁취 투쟁은 잘못된 여권운동 소재이다.

[낙태 문제에서 경계해야 할 두 가지 편견]

 

1. 낙태 문제는 어느 한쪽의 희생을 전제로 하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다고 하는 생각

2. 낙태를 찬성하는 것이 여성의 인권을 지키는 것이라는 생각

 

낙태 문제는 아직도 많은 국가에서 오랜 기간 동안 해묵은 논쟁을 일으키고 어느 나라에서도 완벽한 해결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문제인 것이 사실입니다.

이는 완벽한 이상 사회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낙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완벽히 이상적인 사회 인프라를 갖춘 나라도 없고 모든 사람이 같은 인식 수준으로 일치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현재로서는 여성의 행복추구권 혹은 자기 결정권이나 태아의 생명권 중 어느 한쪽이 양보하지 않으면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그렇게 낙태 문제는 흡사 갇힌 공간에서 정해진 양의 먹이를 놓고 싸우는 생존 경쟁의 장에 그 문제가 들어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갇힌 방을 벗어나면 해결이 보이듯이 낙태 문제도 갇힌 사고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낙태를 허용하자거나 혹은 금지해야 한다는 말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낙태를 허용하거나 금지할 필요가 없는 상태로의 진입을 위해 노력해 보자는 의미입니다.

낙태 수요의 완전한 소멸은 언뜻 보면 아니 당장의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며 좀 어려운 일일 뿐입니다.

그리고 어렵기 때문에 그만큼 더 치열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저는 낙태 일선에서 오랜 기간 일해 본 의사로 낙태 문제는 해결-거의 완벽한 해결-가능한 대상의 하나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실제 경험에서 깨달은 사실입니다.

주변 여건의 변화로 혹은 자신의 생각의 변화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이제 그러한 주변 여건의 변화와 생각의 변화로 낙태냐 출산이냐 하는 힘든 결정의 장으로 여성들을 구해 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낙태를 정치적 목적이나 여성 인권운동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도 매우 걱정스러운 접근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낙태를 허용하는 것이 여성의 인권을 고양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낙태율이 높은 나라들 치고 여성의 인권이 발달한 나라는 없습니다.

임신 여성이 자신의 마음대로 낙태를 하는 것이 자신의 의사결정권이 제대로 존중받는 일처럼 호도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경우든 자신의 결정대로 낙태를 할 수 있는 권리가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항의할 것이 아니라 그에 앞서 그런 낙태를 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마련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해야 합니다.

법적 도덕적 허용의 여부와 관계없이 낙태는 여성에게 비극적인 일입니다.

비극적 사건에 대한 결정권 부여가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며 비극적 사건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불행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길입니다.

따라서 낙태 허용을 여성의 인권 쟁취의 대상으로 보는 국내나 세계의 시각은 많은 부분 정치적 의도로 말미암은 바가 크다는 생각입니다.

수십 년간 낙태 시술 의사로 살아오면서 낙태를 하면서 기뻐한 여성을 단 한명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은 이런 제 생각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는 낙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게 만드는 두 가지가 함께 굴레를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굴레를 벗어야 자유를 얻는 것처럼 낙태에 덧씌워진 굴레를 벗어나야 낙태 문제도 해결할 수가 있습니다.

여성과 태아.

그 둘 모두를 살리는 길은 멀지만 가야 하는 길이며 또한 분명히 갈 수 있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