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

월드컵 베이비와 나의 일정

junihome 2010. 6. 25. 22:08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던 2000년대 초반 출산율 추이를 거스르며 2003년 한 해 출산율이 조금 증가했습니다. 2004년부터 다시 감소세로 돌아섰다가 2007년 또 한 번 증가했습니다. 그리고 2008년부터 지금까지는 다시 감소세입니다. 이 현상을 모두 월드컵과 연관시킬 수 있는 객관적 자료가 있지는 않으나 누구나 월드컵 베이비의 가능성을 짐작할 수는 있습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기간 중 콘돔 판매량(편의점 기준)이 28% 증가했고, 한국 경기가 있던 날에는 3배의 콘돔이 팔렸습니다. 2003년 봄 신생아 출산이 작년 대비 10%가 증가하는 이상현상(?)이 생겼습니다. 2002년 여름 이후 미혼모 복지기관의 상담건수가 늘었습니다.

 

 

그 당시 어느 인터넷 신문에 실렸던 기사 하나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월드컵 베이비로 고통받고 있어요."

2002년 8월

 

산부인과에 젊은 여성의 발길이 증가하고 있다. 월드컵 기간에 순간적인 분위기에 휩쓸려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된 젊은 여성들이 산부인과로 향하고 있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강남의 K산부인과 대기실. 여름 휴가철임에도 불구하고 병원 대기실에는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들이 눈에 띄게 많았다.

이 병원 강모 의사는 "지난달 하루 평균 3명 정도이던 젊은 여성이 임신 진료가 최근 들어 5∼8명으로 부쩍 늘어났다"고 말했다.

병원 대기실에는 혼자 앉아서 진료를 기다리는 여성들을 쉽게 볼수 있다. 이들의 특징은 월드컵 기간에 일회성 만남을 즐겼기 때문에 애인이나 남자친구가 없다는 것이다. 진료 후 임신이 확정되면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낙태 수술을 받는다.

한 여대생은 "월드컵 응원 후에 술을 마신 뒤 실수로 모르는 남자와 성관계를 가졌는데 임신까지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면서 "상대 남성의 연락처도 모르기 때문에 혼자 병원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이같은 풍경은 다른 산부인과에서도 목격된다. 일부 유명 산부인과 의사들은 밀려드는 손님으로 인해 휴가도 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산부인과를 찾는 젊은 여성들이 급증한 것은 월드컵의 영향이 크다. 월드컵 기간에 길거리응원의 집결지였던 서울시청 앞과 대학가 부근의 숙박업소는 젊은 남녀들로 빈방이 없을 정도였다. 축제 분위기에 휩쓸려 모르는 사람과 성관계를 맺은 여성들이 시간이 지나도 생리가 없자 불안한 마음에 병원을 찾은 것이다. 보통 성관계를 가진 후 40일 이내에 생리가 없으면 임신일 확률이 높다.

국내 의료계에서 낙태는 법으로 금지하고 있어 월드컵 기간에 임신한 여성의 낙태율을 정확히 산출하기는 힘들다. 서울 강남의 한 산부인과 사무장인 C씨는 "매년 '바캉스 베이비'로 인한 임신진료와 낙태가 9월 초부터 시작되는 데 비해 올해는 한 달 가량 그 시기가 빨라졌다. '월드컵 베이비' 때문인 듯하다"고 말했다.

한국성과학연구소의 이윤수 원장은 "여성들은 원치않는 임신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도록 정확한 성지식을 습득해야 한다"며 "한국 사회에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된 것 같아 안타깝다" 고 우려했다.

 

이런 현상은 거슬러 올라가 1988년 올림픽 때도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면 전국적인 스포츠 열기가 출산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월드컵 베이비가 생기는 것은 경기시간이 대부분 밤과 새벽인 데다 커플들이 함께하는 시간이 늘기 때문이고, 경기 후 들뜬 기분을 조절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올해도 월드컵 베이비 붐을 예상되고 있습니다. 사실 위기임신상담을 많이 하는 낙태반대운동연합으로서는 상담전화가 늘어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저의 일정표에도 '상담' 표시가 늘어날 것입니다. 최근의 신문기사가 앞으로 저의 일정표를 예견하게 만듭니다.

 

 

우리 사회의 병폐가 늘어나는 원인 중 하나는 '원인제공자가 원인의 결과를 책임지지 않고 도피하려는 성향'입니다. 책임자가 도피를 해도 원인의 결과는 남아서 그 누군가는 대신 그 짐을 져야 합니다. 내가 피해서 잠시 이득을 본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행동을 한다면 나는 나를 제외한 4,800만 명이 버리고 간 원인의 결과를 짐지게 됩니다. 서로가 서로를 힘들게 하기 때문에 생각하고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책임이 우리 각자에게 있는 것입니다.

 

월드컵 베이비의 부모를 상담하느라 올 여름과 가을을 보내고, 내년 봄에는 월드컵 베이비를 출산하는 현장에 제가 가 있는 모습이 벌써 눈에 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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