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낙태 합법화 40주년을 맞아서 - 로우 대 웨이드 판결 간단 정리
멀리 떨어진 외국의 낙태 문제를 다루는 목적은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을 배워서 잘못된 판단이나 결정을 하지 않기 위함입니다.
---------------------------
로우 대 웨이드 판결 간단 정리
미국에서 낙태를 비범죄화(非犯罪化) 한 연방대법원의 판결이 1973년 1월 22일 내려졌습니다. 이 판결의 이름을 ‘로우 대 웨이드(Roe vs. Wade)’ 판결이라고 부릅니다.
미국은 1970년대 초까지 대부분의 주(州)에서 산모구명 조치(임산부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의 낙태)를 제외하고는 낙태가 불법이었습니다. 1969년 텍사스 주 댈러스에서 22세의 노마 맥코비(Norma McCorby 1947년 生)가 세 명의 남성으로부터 윤간을 당해서 임신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낙태수술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법적으로 산모구명낙태 이외의 경우에는 낙태를 할 수 없고 성폭행 사건에 대한 경찰 보고서가 없다는 이유를 낙태수술을 거부당합니다. 그러자 1970년 텍사스 주를 상대로 위헌소송을 제기합니다. 노마 맥코비의 사례를 낙태권 확보를 위해서 위헌소송으로까지 끌고 간 데는 두 명의 여성운동가가 있습니다. 새라 웨딩턴(Sarah Weddington)과 린다 커피(Linda Coffee).
새라 웨딩턴과 린다 커피
낙태지지 활동을 했던 노마 맥코비와 새라 웨딩턴
원고는 노마 맥코비인데 신변보호를 위해 가명인 제인 로우(Jane Roe)를 사용했고 피고소인으로는 댈러스 지방검사인 헨리 웨이드(Henry Wade)가 선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소송의 명칭이나 판결의 명칭이 로우 대 웨이드(Roe vs. Wade)가 된 것입니다. 이 위헌소송은 결국 연방대법원까지 가서 1973년 1월 22일 대법원 판사 9명이 7:2로 위헌판결을 내리게 됩니다. 미국 헌법에 사람의 정의가 명시되지는 않았으나 출산 이후를 사람으로 여기고 있다고 해석이 되고, 임신 초기의 낙태는 여성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으며, 헌법정신에 따라 개인의 사생활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임신 3개월까지의 낙태를 결정하는 것은 여성의 사생활권에 해당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판결에 따라서 그 다음날인 1973년 1월 23일부터 낙태는 비범죄화 되었고 대부분의 주에서 임신 6개월까지를 합법적 낙태로 보았고, 법률 적용에 따라서는 출산 직전까지 낙태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73년 연방대법원 판사 9명
마침 린든 존슨 대통령이 서거한 날 낙태 허용 판결이 뉴스로 보도되었다
노마 맥코비는 청소년 시기부터 험난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16세에 결혼을 하여 두 아기를 낳았는데, 남편의 구타가 심해서 헤어졌습니다. 큰 딸은 할머니에게 맡겨졌고, 둘째 아기는 남편이 데리고 갔습니다. 위헌소송 사례가 된 셋째 아기는 실상은 다른 남자와의 관계에서 임신이 된 아기이고,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것은 두 페미니스트 변호사가 시킨 거짓말이었습니다(증언은 유투브에서 Norma McCorvey aka Jane Roe of Roe v. Wade says she was persuaded by feminist attorneys to lie 를 검색해서 보십시오. 지난 대선 때 선거용 동영상이었기 때문에 링크하지는 않습니다). 소송 기간 중 임신 말기가 되어서 아기는 낙태하지 않고 출산하여 입양을 보냈습니다. 1997년 노마 맥코비는 자신을 둘러싼 여권운동가들의 말에 현혹되어 자신이 잘못된 판단을 하였다고 양심선언을 하고 회심합니다. 그 이후 180도 전환해서 낙태를 반대하는 활동에 앞장섰습니다. 2003년에는 1973년 판결을 재심해 달라는 청구를 주 법원에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연방대법원 판결까지 간 소송에 대해 재심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지난 40년 간 미국에서는 5천만 명 이상의 아기들이 ‘합법적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한 번 법이 문을 열어놓으면 다시 닫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지난 40년 동안 끊임없는 낙태반대 활동을 통해 미국의 낙태법은 주별로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별도로 게시하겠습니다].
낙태반대 행사에서 연설하는 노마 맥코비
“미국 전역에 퍼져있는 ‘낙태산업’은 거짓에 기초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내 이름으로 명명되어 있는 법을 없애는 데 나의 여생을 바치기로 헌신했습니다.”
'생명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3년 1월23일 Facebook 이야기 (0) | 2013.01.23 |
---|---|
2013년 1월21일 Facebook 네 번째 이야기 (0) | 2013.01.21 |
2013년 1월21일 Facebook 두 번째 이야기 (0) | 2013.01.21 |
2013년 1월21일 Facebook 첫 번째 이야기 (0) | 2013.01.21 |
2013년 1월20일 Facebook 일곱 번째 이야기 (0) | 2013.0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