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1일, 의협 동아홀에서 있었던 낙태 근절 운동 선포식 사진입니다.
아직 1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지만 흑백의 사진이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굉장히 오래전의 일인듯 싶습니다.
그동안 여러가지 일들을 많이 겪었다는 의미겠지요.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 날 자리에 함께 참여하셨던 산부인과 동료들이 많지도 않았지만 그 산부인과 동료 의사들 중에도 현재는 경영 압박이나 동료 의사들의 비난을 이기지 못하여 다시 낙태 시술을 하게 된 사람도 있습니다.
과연 많지 않은 이 의사들은 왜 이 날 이 자리에 섰을까요?
여성들의 인권을 짓밟는 남성 권위주의 생각에 빠져서?
낙태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병원의 홍보나 경영에 득이 되니까?
정치적 야심으로 사회에 그저 이슈를 제기하기 위해서?
단체의 존재감을 부각하기 위해 그저 첨예한 주제를 건드려 보려고?
개인적으로 낙태로 인해 병원 문을 닫게 되어 다른 의사들도 못하게 하고자 하는 심사로?
위의 말들은 그동안 프로라이프 의사회에 참여하신 분들이 실제 여기저기서 들은 말들입니다.
어쩌면 모두는 아니라도 한두분쯤 실제로 그런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같으면 이렇게 하시겠습니까?
숱한 동료들로부터 파렴치한이라는 욕을 먹어서 산부인과 의료계 내에서 왕따가 되면서까지,
대안이 없어 낙태 중단으로 병원 경영이 어려워서 문을 닫을 지경이 되면서까지,
칭찬보다 비난이 많은 젊은 남성 혹은 여성들로부터 인터넷 상에서 온갖 욕을 먹어가면서까지,
여성 단체로부터 극심한 비난에 시달리면서까지,
정부로부터 외면 당하고 항의를 들으면서까지,
여러분 같으면 이렇게 하시겠습니까?
바보가 아닌 다음에는 더 작은 것을 얻자고 더 큰 것을 희생하지는 않겠지요.
이 운동에 참여하시는 산부인과 의사들이 잃는 것은 결코 적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산부인과 의사든 아니든 자신이 가진 부나 혹은 명예 등 많은 것을 내 놓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그렇게 나서서 얻고자 하는 것은 자신들이 잃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라서 이겠지요.
여러분들이 하지 못한다고 해서, 혹은 하지 않는 일을 다른 사람들이 한다고 해서 비난만 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낙태 근절 운동에 참여한 의사들이 스스로 낙태를 하지 않고 나아가 낙태를 하지 않도록 동료와 사회와 정부에 호소하고 촉구하지 않고 낙태 시술을 한다고 해서 누가 그리 뭐라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당사자들이 원해서 해 주었을 뿐이라고 말하면 누가 크게 뭐라 하지도 않으며 어쩌면 낙태하려는 여성을 배려하는 인권적인 의사처럼 대우 받을 수도 있습니다.
낙태 시술로 하여 경제적 이득을 크게 취한다고 뭐라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불법적 시술에 대한 그리고 비윤리적 시술에 대한 댓가로 그 정도는 지불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그저 의사의 양심에 대하여 조금만 눈을 감으면 대신 경제적 안정을 얻을 수 있고 동료들이나 일부 낙태를 원하는 이들의 극심한 비난을 피할하고 편한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이 매우 익숙한 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의사들의 삶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더 이상 경제적 동인으로 의사의 본래의 사명을 저버리는 것을 중단한 이들의 용기를 폄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혹은 당장의 부작용과 고통의 구실로 낙태 근절 운동을 매도하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비록 그런 부작용이 일시적으로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미리 준비하고 대책을 세우지 못한 선배들 때문에 후세 사람인 우리가 치르는 사회적 비용일 뿐입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힘을 모아 일찍 마무리했어야 할 숙제를 오래도록 방치한 댓가입니다.
(참고로 이 글은 실상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 그저 낙태 근절 운동으로 하여 초래된다고 하는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후유증을 거론하면서 낙태 근절 운동을 비난하시는 분들께 드리는 글입니다.)
2010년 7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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