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덕 컬럼

낙태 하러 온 산모와의 가상 대화

junihome 2010. 8. 1. 00:01

저도 상당한 기간 동안 낙태 수술을 했지만 그런 낙태 상황은 산모 개인 그리고 병원 개인마다 다 다를 것입니다.

다만 보편적이 모습의 낙태 상황에 대하여 실제 상황인 것처럼 문답식으로 올려 봅니다.

낙태를 옹호하시는 분들 특히 여성분들이 보시고 좀 느끼시는 바가 있기를 바랍니다.

 

[외래에서]

산모:

"원장님. 임신 몇주나 되었나요?  아무래도 아기를 더 낳기는 어려워서 아기를 지워야 겠어요. 수술 바로 되죠?"

 

의사:

"임신입니다. 8주 정도 되었군요. 왜 아기를 포기하려고 하시나요?"

 

산모:

"이미 5살짜리 아이가 하나 있는데 지금 아이가 외로울 것을 생각하면 하나 더 낳고 싶지만 남편 월급으로는 아이 둘을 키우기가 빠듯하거든요. 요즘 사교육비가 한달에 수십만원씩 되서 얼마나 많이 드는지 원장님도 아시잖아요. 그냥 지워 주세요."

 

의사:

"그래도 돌아가서 남편 분께 말씀드려 한번 더 생각해 보시고 어지간하면 낳는 방향으로 결정하세요. 낙태 수술이 여자들 몸이나 정신 건강에 굉장히 해롭다는 것은 아시죠?"

 

산모:

"이미 남편에게는 임신 검사 받으러 간다고 했고 혹시 임신이면 지우겠다고 미리 이야기해 두었습니다. 남편 생각도 집도 더 넓혀 가야 하고 해서 아이는 더 낳지 않기로 결정을 했어요. 그냥 수술해 주세요."

 

의사:

"초음파에서 아기 심장 박동 소리 들어 보세요. 이미 정상적으로 자라고 있는데 쉽게 생각해서 결정하는 것은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직 아기가 많이 큰 상태가 아니니까 가서 하루 이틀이라도 더 생각을 해서 후회 없는 결정을 하도록 하세요."

 

산모:

"낳을 것도 아닌데 생각해 보면 뭐 하겠어요? 하루라도 빨리 지우는게 상책이지. 그리고 임신일 가능성이 있어서 어제 저녁에 충분히 생각해 보았어요. 제발 이것저것 설교하려 하지 마시고 그냥 수술해 주세요. 부탁드려요."   

 

의사:

"예 알겠습니다, 할 수 없군요. 다음에는 피임을 잘 하도록 하세요. 남편 분 의사를 전화로라도 확인해 보고 금식을 해서 오셨으면 바로 수술을 준비하겠습니다, "

 

산모:

"예 남편이 콘돔을 쓰는 것을 불편해 해서 잘 안 쓰려고 해요. 여하튼 피임을 잘 할께요."

 

[수술실에서]

산모:

"마취하는 거죠? 전 겁이 많기도 하고 보고 싶지 않아서요."

 

의사:

"예 진통제를 주사도 할 것이고 수면 마취를 하니까 본인은 모를 겁니다. 너무 걱정마시고 몸 조리 잘 하시고 치료도 잘 받으시면 됩니다. 그럼 진통제부터 놓겠습니다."

 

이때 산모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한다.

의사:

"진정하시고 마음을 편히 먹고 심호흡을 하세요. 흥분하시면 회복에 좋지 않습니다,"

 

여전히 산모 흐느끼면서

산모:

"도대체 내가 뭘 잘 못해서 아 꼴을 당해야 하는지....세상이 원망스럽고 피임을 제대로 하지 않은 남편이 원망스러워요..흑흑"

 

마취가 되면서 산모의 울음은 잦아들고 약 5분에서 10분에 걸쳐 날카로운 기구로 자궁 내벽을 긁어 내고 흡입을 해 낸다.

8주 정도 되어서 태아 형체는 거의 분간하기 어렵고 피 덩어리와 조직 잔류물 등이 섞여 있는 채로 흡입기를 통해 빨아들여져 나온다.

초음파로 확인 하니 조금전까지 심장 박동이 팔딱 팔딱 뛰던 태아와 양수로 된 아기집은 깨끗이 없어진 상태이다.

 

마취를 깨운다.

간호사:

"일어 나세요. 산모분, 수술 끝났습니다."

 

산모는 아직 비몽 사몽으로 정신이 다소 혼미한 상태이다.

잠결에 헛소리도 한다.

"뭐야 누가 배를 자꾸 누르는 거야. 아파 죽겠단 말이야. 손 떼. 날 괴롭히지 마.!!"

하면서 몸부림을 치고 소리를 지른다. 물론 잠결에 하는 소리일 것이다.

 

의사:

"병원입니다. 정신 차리세요. 수술 끝났습니다. 심호흡 하세요. 배가 조금 아플 수 있습니다."

 

산모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면서

산모:

"어 병원이예요?"

하더니 갑자기 또 펑펑 울기 시작한다.

 

의사:

"진정하세요. 다 끝났어요. 이제 조리 잘 하시고 치료 잘 받으시면 되요. 나중에 피임도 잘 하시구요."

 

산모는 한참 동안 감정을 추스리지 못하고 계속 어깨를 들썩 거리면서 울기만 한다.

 

왜 이 산모가 이런 슬픈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일까?

어떻게 하면 이 산모의 눈에서 눈물을 거두어 줄 수 있을까, 그리고 또 다른 산모가 눈물을 흘리는 일이 없도록 어떻게 도와 줄 수 있을 지를 곰곰히 생각해 보지만 뾰족한 답을 찾지 못한 의사는 우는 산모의 모습을 뒤로 남기고 왜소한 어깨로 서둘러 외래 진료실로 향한다.

이제는 이런 일을 하는 자신이 의사가 맞는지 아닌지에 대한 회의도 별로 없고 적출해 낸 태아와 부속물을 보면서도 별 다른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저 세상이란 원래 이렇게 생겨 먹어서 자신이 어떻게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자위하면서 수술에 대한 기억을 지워 버리려는 듯 머리를 잠시 흔들어 볼 뿐이다.

 

2010년 3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