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KBS 심야 토론으로 다루어진 낙태 논쟁을 방청석에 앉아서 100분간 지켜보면서 답답한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답답하다는 것은 낙태 찬성 쪽으로 나온 패널이나 낙태 반대쪽으로 나간 우리 측 패널에 대하여서나 마찬가지로 느낀 소감입니다.
저는 방법에 대한 토론이 되기를 바랐는데 결국 또 가치 논쟁이라는 해묵은 논쟁의 장만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방송을 보면서 저나 시청자 혹은 정부 당국자도 아마 비슷하게 느꼈을 것 같습니다.
낙태 문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고 사회 구성원마다 첨예한 논쟁이 벌어지는 문제로 장기간의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여 단시간에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
아마 그런 생각을 많이들 느끼셨을 것이고 결국 정부가 장기적으로 사회의 협의를 통하여 해법을 찾겠다고 한 것을 인정해 줄 수 밖에 없는 토론이 되었습니다.
그동안의 글에서도 밝혔지만 낙태 문제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려면 우선 한가지를 분명하게 해 두지 않으면 안됩니다.
첨예한 사회적 논쟁의 주제라면 단기간에 결론을 내서 해법을 내 놓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허황된 주장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단기간에 정부가 대책을 내 놓으라고 제가 주장한 것은 그런 첨예한 문제가 금방 사회적 공감대가 얻어질 것이라 생각해서가 아닙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방법에 대한 논쟁과 토론이 되었어야 하는 데 가치 논쟁이 되면서 결국 단기간에 해법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은 일로 다시한번 부각되었다는 점이 안타깝다는 이야기입니다.
가치 논쟁이 아니라 방법 논쟁이 되어야
낙태 문제를 태아의 생명 존중과 여성의 행복 추구권의 대립 즉 프로라이프와 프로초이스의 대결로 만드는 한 해법을 마련한다는 것은 요원하며 지금 이 상태에서 한발자욱도 진전해 나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비록 태아도 인간으로 당연히 존중 받아야 마땅하지만 태아를 지키는 대신 여성의 행복 혹은 심한 경우 생명까지도 위협받아야 한다면 결코 한쪽의 일방적 승리로 끝날 수가 없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태아의 생명 존중과 여성의 행복 추구는 사람마다 다 생각이 다를 수 밖에 없고 아마도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일치된 견해로 모든 사람들이 생각을 갖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물론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공식 입장은 태아의 생명 존중이 여성의 행복 추구권 혹은 자기 결정권보다 우선한다는 견해입니다.
그러나 한 단체의 주장으로서 낙태 문제를 남겨 둘 것이라면 그런 생각 자체에 매몰되어 두 개념을 대립되는 개념으로 남겨 놓아도 좋지만 낙태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런 식으로 주장을 위한 주장으로 몰고 가서는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태아의 생명 존종이냐 여성의 행복 추구권이냐 하는 양자 중 하나를 택하는 문제로 낙태 문제를 접근하면 안된다는 이야기를 누누히 해 왔습니다.
A의 가치가 우선이냐 B의 가치가 우선이냐 하는 가치 논쟁의 차원을 비켜서 A의 가치를 희생해서 B의 가치가 정말로 얻어지느냐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지기를 바랬습니다.
즉 낙태 문제를 태아의 생명 존중이냐 여성의 행복 추구권이냐 하는 가치 논쟁이 아니라 여성의 행복 추구를 낙태로 하여 얻을 수 있느냐 하는 방법의 문제로 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여성의 행복 추구를 낙태를 통해 얻을 수 있느냐 출산과 피임을 통해 얻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을 묻자는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저 개인적으로는 여성의 진정한 행복이 낙태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 확실하다면 낙태를 현재대로 허용하거나 아니면 완전 허용하는 것도 반대만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낙태를 통해서 여성의 행복이 이루어지냐 하는 말입니다.
태아의 생명권이 우선이냐 여성의 행복 추구가 우선이냐 하는 데서는 사람마다 혼란이 올 수 있지만 이런 주장에 대하여는 사회적 공감대를 얻기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낙태로 여성의 행복이 얻어진 사례와 반대로 낙태로 여성의 행복이 얻어지지 않은 사례를 대비하면 되는 일이고 말할 것도 없이 낙태를 통해 여성의 행복이 얻어진 사례는 아마 찾기 거의 불가능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쪽으로 방법의 논쟁으로 방향을 잡았다면 낙태는 여성의 행복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쉽게 이해시킬 수 있었을 것이고 그로하여 낙태를 어떻게 하면 대폭 줄일 수 있는지 하는 점에 초점을 맞출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모두의 그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한다면 정부로서도 즉각적으로 낙태를 줄이기 위하여 나서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런 목적이 달성되지 못했고 아마 낙태 문제는 앞으로도 지난한 과정을 겪을 것 같습니다.
물론 한번의 토론으로 그것이 지난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제 이야기는 프로라이프 운동을 펼치는 사람들마저 문제의 해법을 정확히 알고 있나 의구심이 많이 들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오죽하겠나 싶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낙태율이 낮은 나라라고 여성의 행복추구권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낙태율이 매우 낮은 선진 외국들이 특별히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 결정권의 싸움에서 태아의 생명 존중권이 더 공감대를 얻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벌이고 있는 가치 논쟁의 헤어나올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렸다면 그들도 우리와 별로 다른 처지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가치 논쟁에 빠진 것이 아니라 낙태가 여성의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는 쉬운 공감대를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낙태를 줄일 수 있을까 하는 방법에서 노력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처럼 낮은 낙태율을 기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낙태율이 낮은 유럽 국가들이 특별히 여성의 행복 추구권을 침해하면서 태아의 생명권을 더 지켜주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아마 오히려 낙태를 폭 넓게 합법화함으로써 어떤 점에서는 태아의 생명권을 지킨다는 점에서 우리보다 더 낮은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논쟁보다 여성의 행복이 낙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출산으로부터 얻어진다는 점을 정부가 깨달았고 국민들에게 그 점을 이해시켰으며 정책으로 그것을 반영했습니다.
많이 늦었고 지금도 방향을 못 잡고 우왕좌왕 하는 우리 정부나 사회도 이제는 해묵은 가치 논쟁에 빠져 허우적 거릴 것이 아니라 정말 낙태가 여성의 행복을 가져다 주는 수단인지에 대하여 똑바로 바라 보아야 합니다.
만일 낙태가 정말 여성의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이 분명하다면 저는 더 이상 여성의 희생을 바탕으로 태아의 생명을 존중하자고 하는 운동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기 때문에 태아의 생명 존중과 여성의 행복 추구를 위해 오늘도 힘을 아끼지 않습니다.
프로라이프와 프로초이스가 반대 방향으로 끌어 당기는 끝없는 줄다리기가 아니라 같은 방향이라는 것을 우리 스스로부터도 빨리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낙태는 여성의 행복이 아니라 불행
그리고 이런 점에서 얼마전 만난 생명 운동가인 미국 하원의원 크리스 씨의 견해는 제대로 방향을 잡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분은 낙태가 여성에게 끼치는 해악에 대하여 다양한 증거를 가지고 자국 국민들에게 호소하고 있었고 낙태 후 후유증이나 그 치유에 대하여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해결을 위해 노력 한다고 합니다.
미국은 우리보다 윤리 수준이 매우 떨어지는 나라지만 낙태를 하는 의사를 찾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그것은 낙태를 하지 않는 의사가 태아의 생명을 존중해 주는 사명감 있는 의사로 인정되어서라기 보다는 낙태를 하는 의사는 돈을 벌기 위해 여성의 행복과 권익을 짓밟는 의사로 자리 매김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오늘 프로그램에서 전화 연결해서 낙태 후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고백한 여성의 한마디가 거기 나온 모든 패널이 한 이야기보다 가장 효과적으로 낙태의 문제를 알렸습니다.
낙태는 여성의 행복이 아니라 불행이다라는 간단하고도 분명한 사실을 알리는데 우리 모두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2010년 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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