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의견은 동의하지 않는 것임을 미리 밝힙니다.
이유는 하단에 있습니다.
정철의 '빚'은 인간의 경험칙(經驗-則)입니다.
원래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유래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경험만으로는 결코 사랑을 알 수 없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지금 알게 된 것은 예전에는(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은 수단이 아니고 목적이기 때문에 사랑에는 결코 보람을 겨냥하거나 보상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사랑을 받는 입장에서도 감사의 뜻으로라도 변상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성경에도 '사랑의 빚'이라는 표현이 한 번 나옵니다. 그러나 이 빚은 특이한 빚입니다. 갚을 수도 없고 갚아서도 아니 되는 특이한 빚입니다. 내가 누구를 사랑한다면 그렇게 사랑하는 것이 목적이기에 사랑하는 것으로 다 된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사랑했는데 너는.....?" 이런 식으로 대응하면 안 됩니다. 또한 누군가가 나를 사랑한다면 그 사랑을 받으면 되는 것이지 "이렇게 받았으니 나도 너에게.....?" 이런 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정철 씨가 사랑을 다른 것으로 갚아서는 안 되고 갚으려면 사랑으로만 갚아야 한다고 했을 때 앞부분까지만은 수용할 수 있지만 뒷부분은 맞지 않습니다. 사랑에 대한 보상으로 사랑한다면 이때의 사랑은 목적이 아니고 수단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주기만 행동과 태도이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은 받기만 하면 이미 사랑하는 사람에게 할 도리를 다 한 것입니다."
사랑은 선물인데, 만일 선물값을 매겨 되돌려 준다면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런 말을 쉽게, 생각 없이 했었습니다. "받은 은혜에 감사해서 만분의 일이라도 갚아야 할 텐데......." 은혜는 선물인데 만분의 일이라도 갚으면 은혜는 더 이상 은혜 되지 않습니다. 자녀에게 흔히 하는 말, "내가 그동안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네가 이럴 수 있니?" 이 말 속에는 사랑, 은혜, 선물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