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이야기

2014년 1월2일 Facebook 두 번째 이야기

junihome 2014. 1. 2. 17:05
  •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충돌하는가?]

    낙태반대운동연합 소식지 '생명의 소리' 2014년 1월호에 실린 저의 글을 노트에 옮겨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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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충돌하는가?

     

             2012년 8월 24일 헌법재판소는 낙태를 형법으로 처벌하는 것의 위헌소송에 대해 합헌 5, 위헌 4의 의견으로 합헌 판결을 내렸다. 이때 주요 쟁점으로 다룬 것이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다. 아직은 태아의 생명권을 임산부의 자기결정권보다 우위에 두어야 낙태가 만연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약간 우세했다. 헌법소원에서만이 아니라 낙태 관련 토론이나 논쟁을 할 때도 두 주제를 한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첨예하게 대립시킨다. 그래서 마치 두 가치가 서로 충돌하며 갈등을 빚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기에 몇 년이 지나 지금과 다른 재판권들로 헌법재판소가 구성되면 합헌 3, 위헌 6의 의견으로 낙태 처벌이 위헌 판결이 날 수 있고, 그 이후로는 낙태 자유화가 물살을 타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는 사람들도 있다.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충돌하는가? 아니다. “비교는 어떤 영역과 다른 영역의 질서가 동일한 것을 전제로 한다.”는 해석학 원리에 맞지 않는다. 노인의 생명권과 청년의 행복추구권을 비교하여 가치판단을 하려고 한다면 사람들의 반응을 어떨까? 사회가 고령화 되면서 장수하는 노인들 때문에 청년 세대의 삶이 고단하다고 해서 80세 이상 노인들의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할 수 있는가?



    A의 생명권과 B의 행복추구권은 다른 차원의 주제이기 때문에 비교대상이 될 수 없듯이,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비교하는 접근방식을 피해야 한다. 그 둘을 대립시키는 것을 정책으로 삼은 세력이 있다는 것을 주시해야 한다. 낙태 문제를 ‘생명권 vs. 자기결정권’이라는 프레임에 가두면 언젠가는 법률적으로 적당선에서 타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있다는 뜻이다.

     

           임산부가 자기 손톱을 다듬거나 쌍꺼풀 수술을 하는 것과 낙태를 하는 것은 차원을 달리 한다. 손톱이나 눈꺼풀의 세포는 생물학적으로 독립개체가 아니기에 여성의 자기결정권 범주에 포함된다. 그러나 자궁 속에 있는 태아는 독립개체이기 때문에 수정된 순간부터 여성의 자기결정권 범주를 넘어선다. 태아는 엄마와 평등의 관계를 적용해야 하는 대상이지 선택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임신하겠다, 임신하지 않겠다는 결정권이 여성에게 있다. 임신한 아기를 방해 받지 않고 출산할 결정권이 여성에게 있다. 그러나 임신한 아기를 제거할 결정권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엄마와 자기 아기를 싸움 붙이고 있는가? 아기의 생명을 이데올로기 쟁취의 도구로 삼는 사람들을 주의하라!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낙태반대활동 단체 중 하나인 라이브액션(LiveAction)에서 최근에 의미 있는 포스터를 제작했다. 식사 후 무엇을 후식으로 할 것인가는 ‘선택’의 대상들이지만, 출산 전 아기와 출산 후 아기는 죽일 수 있거나 죽일 수 없는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태아는 자녀이지 임산부가 생사의 결정권을 행사할 대상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