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ihome 2011. 11. 16. 20:13

오늘은 제가 예수님 영접한 날, 31번째 영적 생일입니다.

어머니 뱃속부터 교회당에 실려 다녔고 '예수님 새끼'라는 별명을 교회에서 얻었고 기독교 문화에는 익숙했지만

믿음의 본질을 알지도 경험하지도 못하고 지내다가 스물 여섯 청년의 때에 낯선 장소, 우연한 상황에서 회심을 했습니다.

1980년 11월 16일, 인생의 방향이 반전된 날입니다.

 

친구를 만나러 처음 가보는 서울침례교회당을 들렀다가 거기서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래 사진의 1번 자리에 있던 접의자(보조의자)에 앉아서 설교를 듣다가 예수님의 인격적인 실체를 체험하고

죄인임을 회개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머니 뱃속부터 교회당에 실려 다녔습니다. 이른바 모태신앙이라고 부르지요. 그러나 우리 교회에서는 '모태교회당출석자'라고 부릅니다. 태아가 회개하고 신앙고백을 할 수가 없으니까요. 제 기억으로는 다섯 살 때부터 어머니 손을 붙잡고 새벽기도모임에 따라 나갔고 주일 아침·저녁 예배, 수요기도회 등 교회 모임에 빠지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성경퀴즈대회, 찬송가 부르기 대회, 암송대회 등은 늘 1,2등을 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임원활동을 해서 고등학교 때는 학생회장을 역임했습니다. 다니는 학교에서도 기독교서클 임원으로 봉사했습니다. 제 어려서 교회에서 부르는 별명이 '예수님 새끼'였다고 합니다. 착하고 성실한 아이로 보였으니까요. 전형적인 기독교 문화권에서 자란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교회당을 다니는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 정도로 교회생활은 저의 일상이었습니다.

 

그러나 대학교에 들어간 이후로 세상과 교회를 넘나드는 이중생활의 곡예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이중생활이 아니라 단종(한 가지) 생활이었지요. 교회생활은 주일 하루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예의만 갖추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에게 신앙생활, 교회생활의 동기가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도 나중에야 알게 된 것입니다.

 

저는 교회당을 다니면서, 제가 지금 전하고 있는 복음을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무엇이 죄인지, 하나님과 나는 어떤 관계이어야 하는지, 예수님의 죽음이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구원이 무엇인지, ...... 기본적인 구원의 복음을 들어본 적도, 도전 받은 적도 없습니다. 저는 당연히 기독교인 취급을 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교회에서 들을 수 있었던 이야기는, 사실은 동네 노인정에서도 들을 수 있는 "착하게 살자, 성실하게 살자" 수준의 도덕 강좌이었습니다.

 

두 권사님의 아들로, 교회봉사 뼈 빠지게 하는 청소년, 청년이었던 저에게 그 누구도 구원을 의심하며 도전할 수는 없었고, 교회도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중 1980년 11월 16일, 아주 우연한 이유로 제가 다니는 교회가 아닌 다른 교회를 방문하게 됩니다. 얼마 전까지 지구촌교회를 담임하셨던 이동원 목사님이 서울침례교회에서 목회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친구를 찾으러 갈 일이 있어서 그 교회당을 방문했다가 설교 내용과 관계없이 제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 날 설교는 복음설교가 아니었습니다만, 하나님과 내가 어떤 사이인지를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설교를 듣다 말고 저는 스스로 알아서 머리 숙여 죄인임을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참으려 해도 중단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단 한 번도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해 본 적이 없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옹호자로서 누군가 하나님이 없다고 하면 흥분해서 변호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이 더욱 느껴졌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내가 하나님을 부정했으면 몰라도 하나님을 인정하기는 했는데 내가 인정한 그 하나님과 실제적으로는 평생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는 사실에 내가 죄인인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살펴 드린 적도 없고, 내 인생을 나를 만드신 그분의 뜻을 고려해서 살아낸 적도 없고, 하나님과 개인적인 대화를 나눈 적도 없었던 것입니다. 나쁜 짓을 해서 죄인이 아니라 하나님과 무관히 살아가는 나의 태도가 죄라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이지요. 그제서 진정한 회개가 우러났던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동안 교회에서 수없이 들어왔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나를 위한 구세주, 나를 위해 피흘리신 분이어야 했습니다. 그제서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군요.”하면서 예수님을 나의 주님, 내 인생의 소유권자로 영접하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평생 처음으로 '내 예수님'이라고 발음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교회에서 수없이 사회를 보면서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표현입니다. 늘 '우리의 구세주, 우리의 예수님'이었지 '나의 예수님'은 아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일대일로 예수님을 상대하지 못했었으니까요. 그렇게 교회당 생활 26년 만에 구원 받은 신자가 된 것입니다. 바울이 다마스쿠스 가는 길에 쓰러진 것과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 후 신앙생활을 한 지 올해가 31년째 되는 해입니다. 제가 그런 신비체험을 한 이후에 정신 나간 사람처럼 간증하고 전도하고 돌아다니니까 예전에 다니던 교회의 장로, 권사님들이 "너는 이제 구원 받은 게 아니라 예전에 구원 받았는데 구원 받았다는 것을 이제 느끼게 된 것이야."라고 저의 역사를 재해석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는 내가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성경의 증언들과 나의 체험을 비교해 보니까 제가 26살 때 처음으로 죄인임을 회개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인생의 주님으로 영접해서 구원 받은 게 맞더라고요. 사망에서 생명으로, 어두움에서 빛으로 구원 받았던 날이 늘 기억나고, 그 날을 만들어 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