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이야기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쟁쟁합니다 [뉴스파워 2011년 2월 22일]
junihome
2011. 2. 23. 17:13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쟁쟁합니다” | ||||||||||||||||||
‘베이비박스’ 만들어 버려지는 아이들 입양하고 있는 이종락 목사 | ||||||||||||||||||
벨소리가 들리면 가슴이 철렁합니다. 밤 10시가 넘어서 들려오는 벨소리는 100% 아이가 들어오는 소리입니다. 아기를 가져다 놓으라고 만든 베이비박스지만 벨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지난 13일 SBS 8시 뉴스를 통해 가슴이 따뜻해지지만 한편으로는 먹먹해지는 보도를 접했다. 서울 난곡동의 한 목사가 ‘베이비박스’를 운영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베이비박스’는 버려지는 아기를 공식적으로 허락하는 장치다. 아기를 버릴 것이라면 길거리에 버리지 말고 안전하게 ‘베이비박스’에 버리라는 말이다. 이종락 목사(주사랑공동체, 예장 고려개혁)는 지난 해 3월 베이비박스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1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베이비박스를 통해 들어온 아기는 벌써 8명이다.
21일 오후 그가 사역하고 있다는 ‘주사랑공동체’를 방문해 ‘베이비박스’와 ‘주사랑공동체’ 사역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네, 2월 들어서 2명이 더 들어왔어요. 남기고 간 쪽지에는 “죄송합니다. 저를 찾지 말아 주세요”라고 해놨더라고요. 미혼모예요. 고등학교 1학년과 2학년나이였습니다. 그래도 10개월 동안 낙태 안 시키고 이곳으로 아기들을 데려다 놓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주사랑공동체’는 하늘의 위로와 생명이 있는 곳입니다. 제가 이렇게 생명을 살리기 운동을 하는 이유는 여기로 오는 아이들이 법적 사각지대에 놓여있어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생아들을 받아주는 보호시설은 거의 없습니다. ‘베이스박스’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한 아이가 집 앞에 버려져 있었습니다. 얇은 굴비 박스에 이불도 얇은 이불, 거기에 우유 한 병, 기저귀 다섯 개가 놓여있었습니다. 새벽 3시에 놓고 갔더군요. 날씨도 제법 쌀쌀했습니다. 그 아이를 들고 들어오는데 들고양이가 그 주변에 있던 것을 봤습니다. 들고양이는 소리가 나거나 움직임이 포착되면 공격을 합니다. 이렇게 길거리에 버려지는 아기들이 들짐승에게도 피해를 입겠구나 싶어 겁이 났습니다. 한 기사를 통해 체코에 베이비박스라는 것이 있다는 소식들 들었었죠. 그래서 이메일을 보내 자문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답이 없더군요. 하는 수 없이 자체제작을 했습니다. 베이비박스는 ‘주사랑공동체’에서 하는 사역의 일환입니다. 이러한 생명을 살리는 사역은 제 삶에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라고 여기고 있고요. 그러한 사명은 하나님께서 우리 집에 막내아들 은만이를 보내주면서부터 시작됐습니다. 막내는 지금 25살 청년인데 전신마비로 25년 동안 누워있습니다. 14년 동안 병원신세를 졌었죠. 은만이는 태어날 때부터 안면기형이었습니다. 자연분만을 하려는데 아이가 나오지 않았죠. 3시간을 고생한 뒤에 제왕절개를 했는데 얼굴에 얼굴크기만한 혹이 있었어요. 또 출산 후 4개월 후엔 임파선에 악성종양에 감염까지 됐습니다. 의사들은 “이제 포기하시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습니다. 은만이가 살아나도 전신마비로 일평생 고생할 것입니다”라고 말하더군요. 의사를 진정시키면서 말했습니다.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라고요, 그런 말 하지 말고 아이를 살리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전신마비의 몸으로 은만이는 25년을 살고 있습니다. 어느 날 저는 ‘이 아이가 이렇게 고통스러우면 데려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주님은 제 눈을 열어 장애 아이들의 고통을 보게 하시고 기도를 바꾸셨습니다. 만약 저도 다른 사람들처럼 은만이를 포기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지금 ‘주사랑공동체’에 있는 이 아이들은요? 하나님께서는 그 병원생활 동안 다른 아이들의 아픔을 알게 하셨습니다. 본래 저는 마음이 걍팍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이러한 마음을 품게 하셨습니다.
네,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확신을 가진 일이 있었습니다. 13년 정도 된 것 같아요. 저희 아이가 병원에 입원해 있었을 때였습니다. 병원에 있던 한 할머니가 다가와서 목사님이시냐고 묻더니 “목사님 같은 분에게 손녀딸을 맡기면 안전할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할머니는 외손녀딸이 한 명 있는데 의료사고로 뇌성마비가 됐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목사님께서 만약에 제 손녀를 돌봐주신다면 제가 예수를 믿겠습니다”라고 고백을 하는 겁니다. 저는 할머니의 그 말에 어떤 다른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제 아이로도 벅찼습니다. 다른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내와 상의 하지도 못하고 그냥 “알겠다”고 승낙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바로 그 할머니에게 영접기도를 해드리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참 기분이 묘한 것이 그 아이가 우리 집으로 오고 난 뒤 몇 일 뒤에 할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할머니는 자신이 돌아가시게 될 것을 알았던 모양입니다. 그 때 왔던 아이가 지금 16살이 돼 있습니다. ‘주사랑공동체’에서는 어떤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건가요? 주로 장애아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산부인과에서 보통 장애아로 태어나게 되면 부모들은 그 아이를 포기하고 그냥 돌아갑니다. 그런 아이들은 갈 곳이 없습니다. 법적 사각지대에 놓여있어요. 작년 6월에 MBC 피디수첩에 이러한 내용이 고발 됐어요. 그렇게 버려지는 아이들을 그대로 소각장에 버린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그 아이들을 살리기 위한 계획을 저를 통해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2009년도에 산부인과의사협회 회장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이 생기면 ‘주사랑공동체’로 보내달라고 부탁 했습니다. 산부인과를 다니면서 부탁을 하기도 하고, 최근에는 홍보책자를 만들어서 산부인과로 보내려고 준비 중입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을 테니 그런 아이들 희생시키지 말고 보내달라는 내용으로요.
주사랑공동체 운영은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재정적인 것도 그렇고 사모님과 목사님 두 분이서 이 아이들을 다 돌보기는 힘들 것 같은데요 재정적인 것은 그래도 하나님께서 그 때 그 때마다 채워주셔서 풍족하지는 않지만 아이들을 거둘 수 있는 정도로는 꾸려나가고 있습니다. 봉사 오시는 분들이 십시일반으로 후원해 주시기도 하고 또 직접 봉사를 해보신 분들은 다른 후원자분들을 소개해 주기도 하세요. 정부지원 없이 순전히 그런 후원금을 받아 생활하고 있습니다. 도와주시는 분들이 참 감사하죠. 또 바우처라고 하는 지체장애우 봉사 단체에서 평일에 자원봉사자들을 보내주세요. 그래서 그나마 낮에는 한숨을 돌립니다. 또 주말에도 자원봉사자들이 많이 찾아와주세요. 그래서 장애우들 운동도 시켜주고 밥도 먹여주고 베이비박스로 들어온 갓난아기들도 돌봐주고 합니다. 가장 큰 걱정거리는 사실 ‘시설’입니다. 현재 ‘주사랑공동체’는 58평의 규모에 1,2층으로 나눠져 21명의 장애우들과 저와 사모, 그리고 베이비박스를 통해 들어온 8명의 갓난아기가 생활하고 있습니다. 가장 걱정은 장애우들입니다. 2층에서 지내는 장애아들은 1층으로 내려올 수 없습니다. 계단도 가파르고 협소한데다 덩치도 커져 옮겨서 내려오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을 위한 시설을 짓기 위한 공간을 알아봤더니 16억 정도의 비용이 든다고 하더군요. 지금 여건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사실 지난 해 10월 달에 우리나라 몇 몇 교회에 도움을 요청하는 글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무슨 사정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교회에서도 연락을 받진 못했습니다.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저는 이러한 시설을 위해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동역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함께 기도해 줄 수 있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함께 해줄 수 있는 기독교인들이었으면 좋겠다는 기도를 합니다. 믿음의 기업이나 교회들이 앞장서 관심을 가져주길 기대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장애가 없는 건물에서 우리 아이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꿈꿉니다. 계단이 없는 곳, 휠체어를 타고 다닐 수 있는 곳, 아이들 침대를 끌고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 하루 빨리 생겨 다시 생명을 얻게 된 우리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사역하시면서 가장 힘들 때는 언제신가요? 아이들 아플 때가 가장 힘듭니다. 함께 생활을 하다가 천국으로 간 아이들이 있습니다. 한나라고 하는 녀석인데, 그 아이는 무뇌였어요. 엄마는 14살이었죠. 술과 담배 본드까지 흡입하는 그런 엄마였어요. 한나를 병원에서 소개받을 때 의사는 오래 못 살 거라고 했어요. 그런데 주사랑공동체에 와서 6년이나 살다가 천국으로 갔습니다. 제가 그 놈을 보내고 나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제가 저희 어머니,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안 울었는데 미운정 고운정이 든 한나를 보내는데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요. 집에서도, 차에서도, 잠을 자다가도 정말 몇 일 동안 생각이 나고 눈물이 나서 애먹었습니다. 한나를 보내고 천국에 대한 소망이 더 커졌습니다. 그렇게 아이가 아프고 돌보던 아이가 천국으로 갈 때 가장 힘든 것 같아요.
제가 이런 사역을 하다 보니 낙태반대운동을 안할 수가 없습니다. 한국의 낙태가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닙니다. 정부의 발표로는 연간 35만 명 이라고 하지만 현장에 있어보니 비공식적인 것까지 포함해 약 80만 명이 연간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한 채 낙태로 죽어갑니다. 낙태반대운동에 앞장서기 위해 산부인과 의사들을 만나야 했습니다. 저는 3개월 동안 기도했습니다. 그때, 진오비(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의 모임)라는 모임이 생긴 것을 알게 됐습니다. 진오비는 현재 ‘프로라이프 의사회’로 명칭을 바꿨습니다. 3개월 동안 기도해서 그분들에게 우리 존재를 알리게 됐습니다. 지금은 낙태반대운동연합회, 프로라이프 의사회, 주사랑공동체가 함께 ‘생명 살리기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낙태가 은밀하게 이뤄집니다. 그러니 정확한 수치를 알 수가 없죠. 사실 이 모든 일은 한국 교회가 회개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잘못 살아서 그런 겁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지 못해서 그런 겁니다. 우리가 회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낙태뿐만이 아닙니다. 자살, 이혼문제등 우리가 잘못 살아서 발생하는 사회적인 문제가 얼마나 많은 줄 아십니까. 다 우리 잘못입니다. 정부에다 대고 잘하고 있다니 못하고 있다니 지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요즘 크리스챤들은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갑니다. 목회를 하는 목사들도 마찬가집니다. 개인적인 목회, 개인 욕심을 채우기 위한 목회, 우리가 해야 할 돕고 구제하고 선교해야 하는 부분은 잊은 채 살아갑니다. 그러니 요즘 기독교인들이 욕을 먹을 수 밖에 없습니다. 최근 감리교 사태와 한기총 사태를 보면서 너무 가슴이 아프고 쓰렸습니다. 한국 교회가 회개하고 돌이켜서 초대교회, 성령의 놀라운 통치하심이 있는 곳으로 회복돼야 합니다. 지금 이상태로라면 절대 소망이 없습니다. 한국 교회가 질적 부흥뿐 아니라 영적 부흥으로 뜨거워지길 기대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목회자들이 하나님 앞에 청렴해야 합니다. 또 기독교인들 또한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회개하며 성령님께서 통치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주사랑공동체 아이들에게 어떤 ‘아빠’가 되고 싶으신가요? 저는 언제까지나 내 아이들에게 든든한 친구이자 부모가 되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언제까지 아이들을 입양할 거냐고 묻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여전히 버려지는 한 계속해서 입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 삶보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사랑공동체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아래 버려진 아이들을 보호하고 안전하게 있을 수 있는 기관으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무슨 계획을 가지고 있냐고 묻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저는 계획이 없다고 대답합니다. 모든 것이 내 계획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이 자리까지 온 것처럼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모두 책임져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