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덕 컬럼 2

어른들을 위한 동화 - 어느 참나무 마을의 이야기

junihome 2010. 11. 20. 02:16

심상덕

2010년 11월 19일

 

오랜 전에 남쪽 어느 시골에 참나무가 모여 사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아무 문제없이 평온하게 잘 살던 참나무 마을에 어느 날 심한 폭풍우를 동반한 태풍이 몰려 왔습니다.
바람은 너무도 강해서 참나무들은 온전히 서있는 것조차 힘들었습니다.
특히나 열매가 많이 달린 젊은 참나무들은 줄기도 약한데다가 도토리로 인한 무게 때문에 나뭇가지가 휘청거리다 못해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젊은 참나무들은 너무도 강한 태풍 때문에 자신들의 가지에 달린 도토리를 그대로 두고서는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어쩌면 큰 줄기마저 부러져 나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도토리를 미리 떨구어 내 버려야겠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비록 그렇게 되면 도토리가 싹을 내리지 못하고 땅에서 썩어 버리고 말겠지만 그거야 나중에 다시 도토리를 맺으면 되는 일이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그러나 일부 늙은 참나무들은 그래서는 안된다고 맞섰습니다.
늙은 참나무들은 태풍이라는 고난에 대비하여 좀더 든든한 가지를 키우고 뿌리를 좀더 땅 속 깊숙이 내리지 못한 것이 잘못이며 도토리들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설득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도토리는 우리와 같은 참나무의 일원이며 우리가 끝까지 지켜야 하는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에 도토리를 희생하기 보다는 태풍을 막는 방풍림을 만들고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뿌리를 든든히 하는데 힘을 쏫아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호소에도 불구하고 많은 젊은 참나무들은 태풍으로부터 살아 남기 위해 도토리를 희생하는 것은 아무 문제 없는 일이라는 주장과  도토리는 자신의 것이라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이라는 주장을 하면서 도토리들을 다 떨어내 버리고 말았습니다.
늙은 참나무들은 안타까웠지만 어쩔 도리가 없어서 하루 빨리 태풍이 지나가기만을 바랐습니다.
그러나 금방 지나가고 말 것 같던  태풍은 멈추지를 않았습니다. 
이번 태풍이 지나가면 또 다른 태풍이 왔고 그것이 지나가면 또 다른 쪽에서 다른 규모의 태풍이 오면서 태풍은 끊임없이 밀려왔습니다.
그렇게 수십년이 지나는 동안  이제 참나무 마을에는 더 이상 남아 있는 도토리가  없었습니다.
도토리가 없어지면서 더는 어린 참나무도 생겨 나지 않았습니다.
도토리가 없어지면서 더 잘 클 줄 알았던 젊은 참나무들도 어쩐 일인지 더 약해지고 힘을 잃어가기만 했습니다.
그리하여 수백년도 아니고 수천년도 아니고 불과 수십년이라는 짧은 세월이  흐르고 난 뒤에는  이제 그 마을에는 한그루의 참나무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메마른 바람만이 떠도는 불모의 땅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곳에 한때 울창하고 보기 좋은 참나무 숲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저 한때 젊은 참나무들이 주장했던 글귀가 적힌 나무 조각만이 황량한 들판을 굴러 다닐 뿐이었습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습니다.
"도토리는 참나무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