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덕 컬럼 2
우리 사회는 희망과 미래를 포기하고 말 것인가?
junihome
2010. 11. 3. 18:23
심상덕
2010년 11월 2일
얼마전 어느 사회학자가 쓴 임계 질량에 관한 글을 보았습니다.
임계 질량이라고 해서 물리학적 의미는 아니고 사회학적인 의미로 쓴 글이었습니다.
그 분의 주장에 따르면 모든 사회 집단에서 임계 질량 (critical mass)은 13%정도라고 하더군요.
즉 어느 집단 내에서 비록 소수자라 하더라도 13% 정도 이상의 사람이 모이면 그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며 권익을 챙길 수 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정말 13% 정도의 사람만 있다면 그렇게 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13%의 사람이라는 것은 분명 적지 않은 수임에 틀림없어 보입니다.
그것이 이쪽 편에서의 수이든 저쪽 편에서의 수이든 말입니다.
낙태 문제에 있어 낙태를 강하게 거부하고 근절하고자 애쓰는 사람이 13%이거나 반대로 낙태를 강하게 요구하고 낙태를 완전히 허용해 주기를 원하는 사람이 13%이거나 마찬가지로 적지 않은 파장이 불러 일으켜 질 것입니다.
현재는 낙태를 강하게 요구하는 사람이 다수를 차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낙태에 대하여 허용 내지는 방관자적인 입장을 대다수 사회가 유지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제는 그런 분포가 좀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낙태에 대하여 완전 허용을 요구하는 그룹이 13% 이내로 떨어지고 반대로 낙태 근절을 목소리 높여 외치는 이들이 13%를 넘는다면 그 사회는 낙태를 하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될 것이고 상당한 추진 동력을 부여 받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소수가 생길 수 있는 여지가 없지 않지만 그것은 과도기에 잠시 나타나는 현상에 머물 뿐입니다.
왜냐하면 낙태 문제는 예방이 가능한 그것도 쉽게 예방이 가능한 사회적 질병이기 때문입니다.
암과 같이 치료나 예방이 어려워 보이는 질병에 대하여도 많은 의학자와 생물학자 그리고 정치가들이 각고의 노력을 합니다.
더군다나 건전한 성관계와 효과적 피임이라는 적절한 예방 방법이 있는 질병에 대하여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어떻게 말해도 그 사회의 직무 유기라고 하지 않을 수없습니다.
낙태를 위해 임신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사실이 단적으로 낙태는 근절해야 하는 개인과 사회의 질병임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다소 아프더라도 치료와 예방을 위해 칼을 댈 것이냐 아니면 당장의 고통 때문에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것이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까요?
예방과 치료입니까 아니면 포기와 방조입니까?
의사로서 저는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질병은 더군다나 중증 질병은 반드시 치료해야 하며 예방 할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해 그렇게 해야 합니다.
예방도 실패하고 치료도 포기하여 질병에 무방비로 노출되면 결국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는 것과 같이 매우 큰 댓가를 치를 수도 있습니다.
치료나 예방이 필요없는 경우는 질병이 아닐 경우 뿐입니다.
낙태 현상에 있어 우리는 이제 이것이 고쳐야할 사회의 질병인가 아니면 권장해야 할 바람직한 현상인가에 대하여 분명하게 대답을 해야 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
고쳐야 할 질병, 예방해야 할 질병이라고 생각한다면 언제 치료와 예방 작업에 돌입할 것인가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인가 하는 것이 그 다음의 숙제가 되겠지요.
그 답은 저는 지금 당장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문제를 풀지 못하는 동안에 우리가 잃는 것이 어떤 것들인가를 생각한다면 한시도 미룰 수가 없고 그저 시늉의 모습만 보일 수도 없습니다.
누구나 동감하겠지만 희망과 미래를 포기한 사회는 더 이상 아름다운 곳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