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가 금지되면 여성의 건강권과 인권이 침해된다는 주장에 대하여
여성계에서는 지금의 낙태 반대 운동을 보고 낙태를 금지하는 것은 여성의 건강권을 침해하고 여성의 인권을 억압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수많은 낙태 여성 그리고 출산 여성을 직접 접해 본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주장이다.
우리나라는 비록 법상으로는 낙태에 대하여 매우 엄격한 규정을 가지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법이 거의 사문화되다시피 해서 낙태에 대하여 사회 경제적 이유를 포함하여 거의 전면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나라들보다 오히려 낙태율이 월등히 높은 국가이다.
그러나 그렇게 낙태가 전면 허용되었지만 아무도 여성의 건강권이 증대되었다거나 또는 여성의 인권이 발달한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게 낙태를 할 수 밖에 없는 사회라는 점에서 여성의 인권이 매우 열악한 국가 중에 하나로 자리 매김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말로 여성의 인권을 걱정한다면 지금처럼 무분별한 낙태로 여성이 자신의 몸과 자신의 태아를 마음 대로 해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인권을 배려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 환경에서 빠져 나올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여성의 인권을 돕는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길게 말할 것도 없이 한마디로 말해서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여성의 인권 특히 임신한 여성의 인권이 보장 받았던 나라인가 되돌아 보라는 것이다.
지금 이대로가 좋은가 아니면 지금 이대로는 좋지 않은가 하는 것을 묻는 것이다.
지금 이대로가 좋다면 계속 이 방향으로 가면 된다.
그러나 지금 이대로는 결코 좋은 것이 아니라면 이제는 어떻게 이 상황을 빠져 나갈 것인지를 고민하면 된다.
임신한 여성들이 낙태를 계속하도록 도와 주면서 서서히 그리고 저절로 국가와 사회가 임신한 여성들을 배려해 주는 쪽으로 바뀔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지금처럼 안이하게 지내도 좋다.
그러나 과거가 말해 주듯 저절로 그렇게 될 일은 없을 것이다.
속담에도 있다시피 우는 아이에게 떡 하나 더 주는 법이다.
여성들이 낙태라는 것으로 자신과 태아를 희생하여 사회가 가진 온갖 문제를 스스로 덮어 버리고 만다면 아무도 여러분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돌아 보아 주지 않는다.
돈을 쓸 생각이 없는 정부와 상당한 수입원을 포기해야 하는 대다수 의사들이 일부러 나서서 도와 주는 것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여성 여러분들이 낙태를 하지 않으면 소수의 대형 분만 병원 외에는 사실 별 이득이 없으며 낙태를 한다고 해서 당장 대다수 산부인과 의사들에게 큰 불편이 초래되는 것도 없다.
이 점은 정부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여성 여러분들이 낙태로 문제를 덮어 버리는 한 지금의 현실로부터 벗어날 길은 없다.
이 점 분명하게 인식하고 어느 것이 현명한 대처인지 고민해 보기를 바란다.
출산을 하기 쉽지 않아 낙태를 고민하는 여성들은 당장 어떻게 하란 말이냐는 하소연도 들린다.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여러분이지 의사나 정부가 아니다.
그런 뫼뵈우스의 띠 같은 자가 당착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이 낙태의 고리를 끊지 못하면 그런 상황에 놓인 산모는 인간의 역사가 지속되는 한 언제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끊을 수가 없다.
지금 여성 여러분들이 겪는 고통을 당신들의 딸들에게 그대로 물려 주고 싶다면 지금 그대로 가면 된다.
당신이 조금은 힘들겠지만 당신들의 딸들이 똑같은 고민을 하는 세상에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힘들더라도 지금 당신이 그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 고리는 너무나 견고해서 세월의 힘으로는 저절로 끊을 수가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강력한 의지로 끊고자 하는 사람이 있을 때 그때만 끊어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낙태를 끊는 것은 담배나 혹은 다른 그 무엇보다 끊기가 매우 어려운 고통스러운 선택이지만 그것을 끊었을 때 여성 여러분들이 마주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자유로운 선택이 주어지는 세상, 원하기만 한다면 모든 임신한 여성이 행복 속에서 출산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다.
나는 진정으로 여성 여러분의 행복을 바란다.
그리고 내가 배운 전문 지식과 그간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분들을 돕고자 한다.
더 이상 여성 여러분들이 낙태를 강요하는 사회를 용인해 주지 말기를 바란다.
2010년 3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