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별 문제를 생각하며
성이라는 단어를 국어 사전에서 찾아 보면 사람의 본래 천성, 성미를 나타내는 성, 혈통을 의미하는 성씨로서의 성, 별을 나타내는 성, 적의 공격을 막기 위해 쌓은 성, 거룩하다는 의미로 쓰이는 성등 많이 쓰이는 것만 해도 대 여섯 가지가 넘는 데 지금부터 얘기하려고 하는 성은 사물의 암수나 사람의 남녀를 구분하는 성에 대해서이다.
물론 암수를 구별하는 것이라든가 남녀의 성적 차이라든가하는 지루한 학문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성으로 해서 고통을 겪어야 하는, 아들이냐 딸이냐에 따라서 희비를 겪어야 하는 그런 불쌍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Case 1.
어느 늦은 오후 외래 진료실에 나이가 들어 보이는 중년의 여성이 흰 편지 봉투를 꺼내 놓으면서 다짜고짜 울기부터 시작했다.
구구절절이 늘어 놓는 내용인 즉은 자기가 딸만 둘을 두었고 이번에 다시 임신을 하려고 하는데 이번에도 아들을 낳지 못하면 시집에서 쫓겨날 판국이라는 것이다.
꺼내 놓은 편지는 시어머니의 성화로 써준 각서였는 데 이번에도 아들을 낳지 못하면 합의 이혼을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니 어떠한 방법이라도 상관없고 비용이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제발 아들을 낳을 수 있도록 묘방을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다.
이 사람을 바보 같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불쌍하다고 해야 할까 ?
Case 2.
첫 아이를 제왕절개 수술로 분만한 어느 젊은 산모가 분만 예정일을 넘기고 진통이 시작된 상태로 응급실로 내원하였다.
제왕절개로 분만한 경우에는 다음 아이도 제왕절개로 분만하는 것이 아직까지 국내의 일반적 원칙인 현실에서 만삭이 될 때까지 수술을 하지 않고 있게 된 사정이 궁금하였다.
산모의 얘기로는 첫 아이를 여자 아이를 낳았는 데 자기는 반드시 아들을 낳아야 하는 처지이고 제왕절개수술은 두번까지 밖에 못한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란다.
또 수술을 해서 딸을 낳으면 더 이상은 아이를 낳을 수 없고 진통이 오기 전에 미리 병원에 오면 의사가 수술을 권할 것이 뻔하니 진통이 한참 시작되어 아기를 거의 낳을 때쯤 되어서 오면 수술하지 않고도 아이를 낳을 수 있고 설사 아이가 딸이라 하더라도 다음 번에 기회가 있다는 내용의 이야기였다.
이 산모가 진통 중에 제왕절개 부위의 자궁이 파열되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제왕절개 후 자연분만이 더 안전하기 때문에 그런 방법을 택한 것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이것을 참 위험한 행동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불쌍한 일이라고 해야 할까 ?
Case 3.
젊은 주부가 남편과 함께 외래를 방문하였다.
보호자가 대뜸 의료보험 카드를 내보이며 내게 하는 부탁은 이번에 아내가 다시 임신을 하게 되었고 딸만 이미 둘을 두었으니 성 감별을 해서 이번 아이가 아들인지 딸인지를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다.
딸이면 아마도 임신 중절을 하려는 생각인 것 같았다.
의료보험 카드에 딸만 둘이 올라가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니 꼭 좀 가르쳐 달라고 신신당부를 하며 자기는 3대 독자로 자식이 몇이 되었든 아들을 낳을 때까지 낳을 것이니까 무작정 계속 낳는 것은 가정으로 보나 국가적으로 보나 손해가 아니겠는가하고 주장하는 데는 할 말이 없었다.
문득 가지고 싶은 물건을 갖기 위해 땡깡을 부리는 철없는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 분을 어리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불쌍하다고 해야 할까 ?
이런 것을 과연 누구의 죄라고 해야 할 것인가?
남자의 죄인가, 여자의 죄인가, 아니면 인간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죄라고 해야 하는 것일까? 그도 아니면 바보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당해야 하는 죄라고 해야 할까?
위의 경우들은 모두 실제 있었던 일이고 사실 가만히 되짚어 보면 일면 이해되지 않는 바도 아니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아들을 원하는 부부에게 아들을, 딸을 원하는 부부에게 딸을 안겨 줄수 있다면 더 없이 좋겠다.
그러나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들 낳기를 원하고 한쪽의 성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엄청난 후유증이 발생한다는 데 있다.
지금 초등 학교에서는 여자 짝꿍 없이 남자아이 끼리만 앉게 되는 아이들이 많다고 하는 데 여자 짝꿍을 앉히기 위해서 선생님에게 로비를 하는 학부모도 있다고 들었다.
초등학교 짝꿍 문제에서 이럴 진데 나중에 결혼 적령기에 배우자를 구하는 데에 있어서는 어떠할지 생각만 해도 아뜩할 지경이다.
성감별을 부탁해 오는 산모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사실 별로 없다.
딱히 도와줄 수 있는 방법도 없다.
남녀의 성차별이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에서 어찌 남아선호 풍조만을 탓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고통이나 불이익을 당신 자신만으로 끝내고자 한다면, 그래서 당신의 딸이나 손녀가 똑같은 고통을 겪지 않게 하고자 한다면 이런 나쁜 문화적 편견이라는 고리는 우선 나 자신부터 먼저 끊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육체의 병을 고치기란 힘든 일이다.
마음의 병을 고치기는 더 힘이 든다.
그러나 그것은 한 개인의 병일 따름이라 많은 사람이 동시에 가지고 있는 문화적 편견이라고 하는 사회적 질병에 비하면 차라리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런 문화적 편견을 하루 아침에 고치기는 어렵다.
그러나 고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비록 미래가 되겠지만 해결책이 만들어지는 것이지 저절로 해결되는 법이란 없다.
아기를 가진, 특히 딸을 가진 젊은 여성에게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미래를 바꾸는 데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았으면 좋겠다.
당신의 딸이 살아 나가야 할 미래의 환경을 얼마나 좋게 만드느냐 하는 것은 국가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책임이 있지만 가장 일차적으로는 당신에게 달렸기 때문이다.
2010년 2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