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권이라는 것은 태어난 자들의 이기적 기득권이 아닐까요?
장애인이든 부모가 없는 고아든 가난한 자든 어떤 생명도 그 생명을 희생할만큼 더 높은 가치는 없습니다.
장애인들로 하여 설사 국가적 발전이 좀 더디더라도, 경제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나 고아를 부양하는 부담으로 하여 국가의 짐이 커진다 하더라도 그것을 해결할 목적으로 그들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용인되지 않습니다.
아무 죄없는 태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생명이든 지켜주어야 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 의무입니다.
한 생명의 희생으로 개인의 안위를 얻든 혹은 국가의 경제 발전을 얻든 그것은 더 큰 가치라고 할 수 없습니다.
혹시 태아에 관하여는 그렇게 가장 소중하게 지켜주어야 할 생명이라고 하기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묻고 싶습니다.
그럼 언제부터 모든 것에 우선하여 가장 먼저 지켜주어야 하는 가치있는 생명인 것인가를 말입니다.
뱃속에 있는 경우에는 설사 태어나서 살 수 있는 만삭의 아기라도 희생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뱃속에 있다해도 의학적인 도움없이 살 수 있는 7개월 내지 8개월 이후의 태아는 지켜주고 그 이전의 태아는 희생해도 좋은 것인지 아니면 조금만 의학적 도움을 주면 살 수 있는 5개월 정도된 태아부터도 지켜주어야 하는 것인지.
혹은 모든 태아는 잉태되는 순간부터 지켜주는 것이 맞는 것인지....
지켜 주어야 하는 생명의 기준에 일정한 기준은 없습니다.
부도 그 기준이 될 수 없으며 권력이나 신체적 건강함도 그 기준이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태아의 개월 수도 그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현재의 의학 기술로 혹은 정책적 배려로 혹은 개인의 소신을 통하여서든 무엇을 통하여서든 지켜줄 수 있는 한 지켜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먼저 태어나 산자의 의무입니다.
여하튼 나는 태어났으니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에게 대하여는 내 마음대로 해도 좋다고 하는 것.
이것은 혹시 먼저 태어나 살고 있는 자들의 횡포는 아닐까요?
부나 권력에 대하여 기득권을 가진 자들이 기득권을 가지지 못한 사람을 짓밟는 것은 현실에서 흔히 생기는 일이지만 우리는 그런 것을 줄이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런 노력을 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생명에 대하여 기득권을 가진 우리들도 기득권을 가지지 못한 태아들에 대하여 그 생명을 지켜주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요?
궁극적으로 도달하기 어려운 지점이라 하더라도 최소한 그런 방향으로 노력해 나가야 하는 것은 사람이 사람답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자질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태아를 희생하여 얻게 되는 살아 남은 자들의 이득이 과연 한 생명을 포기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2010년 2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