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의 조건
내 아내는 독일을 가 본 적도 없고, 독일 사람을 만난 적도 없다. 그러나 책에서 접한 독일 사람의 직선적인 태도를 마음에 들어한다. 인간이 잘못을 할 수는 있으나 잘못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잘못을 인정하는 데까지 도달해서도 잘못에 대한 자기책임을 스스로에게 지우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부족한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관계를 형성하고 그 관계를 유지하려면 필요한 기본적인 태도가 용서이다. 용서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부모자식관계, 부부관계, 기타 모든 인간관계는 불가능하다. 수시로 부족함을 드러내는 인간을 포기하지 않고 관계 속에서 함께하려면 용서는 이미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에게서 모델링한 용서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때에도 피해자가 가해자를 먼저 용납하고 한 발 더 나아가 가해자를 위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명명하여 '예정된 용서'라고 하였다. 가해.피해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인간관계에서 언제라도 가해.피해 상황이 벌어질 수 있으므로 관계하는 상대방을 미리 용서하고 함께 지내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자신을 배반한 제자들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때를 기다려서 용서를 하신 것이 아니다. 자신을 배반한 제자들을 먼저 찾아가셨다. 찾아가셨다는 것은 보복을 의미하지 않고 용서를 의미한다. 자기들을 용서하기로 작정하고 찾아오신 예수님의 태도에 대한 반응으로 제자들의 자백과 회개가 일어났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예상하는 '선사과후용서'가 아니라 '선용서후사과'의 현상이 일어났다. 이것이 사실은 진리이다. 용서가 회개에 선재해야 하고, 용서가 회개를 촉발한다.
이것은 예수님의 조건없는 사랑을 체험한 신자들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면 일반적으로는 어떻게 해야 용서와 화해의 경험을 인간들이 할 수 있을까? 용서가 결코 쉬운 것은 아니지만 상대방이 나를 용서해 주는 것이 좀더 쉬워질 수 있도록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 독일 사람들이 보여주었던 모습이 세계의 보편적인 모습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최소한 교회에서는 흔한 일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