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이야기

프로라이프의사회 낙태근절 홍보 시리즈 1 - 낙태의 문제점

junihome 2010. 1. 12. 21:28

프로라이프의사회에서 케이블 채널 육아방송을 통해 알리는 낙태근절 메시지를 연재합니다.

------------------------------------------

 

안녕하십니까?

저는 산부인과 전문의 고승희입니다.

오늘 제가 이 방송을 보고 계시는 시청자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암묵적으로 용인되어온 낙태 문제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낙태는 모두들 아시다시피 태중에 있는 태아를 없애버리는 행위입니다. 

이런 낙태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생명윤리’의 문제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저항하지 못한다고 자궁속의 태아의 생명을 무시하고 무참하게 짓밟은 행위를 죄라는 인식도 못한 채로 생명을 죽이는 일에 점점 더 무감각해지게 하는 것이 낙태행위입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아비 없는 자식으로 태어나느니 차라리 안 태어나는 게 낫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고생하느니 안 태어나는 게 낫다’ ‘장애를 안고 태어나느니 안 태어나는 것이 낫다’ ‘버려질 아이로 태어나느니 안태어나는 것이 낫다’라고요.

하지만, 그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어야할 당사자가 본인 자신이라면 차라리 태어나는 것보다 남이 자신을 죽여주는 것을 감사한 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살아가다 너무 가난해서, 버려져서, 장애가 생겨서 사는 것이 너무 힘들게 느껴질때 사회가 ‘너같은 인간은 살아갈 가치도 없고 너를 위해 차라리 죽어라’ 라고 말한다면 그걸 용인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그런데, 우리는 자신에게는 그런 잣대를 들이대지 않으면서 유독 뱃속에 있는 아이에게만은 그런 잣대와 이유와 핑계를 대며 낙태를 정당화시키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생명을 무시하는 처사입니까?

자신의 고생과 희생이 싫어 자기의 아기를 죽이는 일, 태어날 아기의 생명을 이런 저런 이유로 살아있는 어른들의 잣대로 그 가치를 매기는 일, 이것은 생명의 가치를 무시하는 행위이며, 이런 분위기와 사회적 윤리가 생명경시 풍조가 만연한 우리 사회의 현재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여성의 모성성’이 짓밟히는 문제입니다.

여성은 태어날 때부터 생명을 잉태하고 키우는 숭고하고도 아름다운 능력과 권리를 부여받았습니다. 그런데 낙태시술은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여성의 몸에 인위적인 힘을 가하여 자연스럽지 못한 방법으로 태아를 제거하는 시술입니다. 이 시술을 하면서 자궁은 알게 모르게 상처를 입을 수 밖에 없습니다. 성냥개비 하나도 들어가기 힘든 자궁문을 여성을 마취시킨 채로 기구로 억지로 벌어지게 벌린 다음 기계를 넣어 긁어내거나 흡입하거나 억지로 자궁수축을 시켜 태아를 만출시키거나 하는 방법을 쓰니 어찌 시술후에 아무런 손상도 없고 후유증도 없겠습니까? 육체적인 상처와 손상 뿐만 아니라 여성의 정신적 고통과 후유증도 무시할 수 없는 상처로 남습니다.

낙태시술이 말뿐인 불법이고 암암리에 보편적으로 이뤄지는 행위였지만, 많은 여성들은 자신의 아이를 없애버렸다는데에는 작든 크든 죄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중 적지 않은 여성이 그런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힘들어 정신적 고통을 감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천주교나 종교 단체에서 낙태한 여성들의 정신상담이나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만 보아도 낙태시술은 여성의 육체적 상처뿐만 아니라 정신적 상처까지 남기는 폭력행위인 것입니다.

비록 본인이 원해서 했고, 본인이 해달라고 요청해서 시술을 받았다하나, 그것이 여성에게 상처가 되고 모성이 망가졌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세 번째는 의료인으로서의 본분을 망각한 행위라는 것입니다.

의사는 이땅에서 생명을 지키고 질병을 치유하기 위해 권한을 부여받은 사람입니다. 태아가 ‘질병’이 아닐진대 어찌 낙태시술이 의사의 숭고한 의무이자 본분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오히려 낙태시술은 생명을 지키기는 커녕 생명을 말살시키는 행위입니다.

대한민국의 의사로 사는 거, 사실 너무 힘듭니다. 개인의 희생만 강요할 뿐 국가적 지원은 없으면서 오히려 규제만이 판을 치고, 정부 정책자들에 의해 의사로서의 전문가적 견해조차 무시당하며 불법과 편법이 없이 병원을 운영하기에는 너무나 힘이 들게 만드는 구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도 생활인이고 가장이기에 수입원이 되는 낙태시술의 유혹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낙태시술로 돈을 버는 의사들을 손가락질만 할 게 아니고 그들의 고통과 처지를 같은 의사로서 매우 가슴 아프고 한편 이해도 갑니다.

하지만, ‘의사’라는 명칭의 ‘사’자라는 한자는 ‘일 사’자도 아니고 ‘선비 사’자도 아닙니다. ‘의사’의 ‘사’자는 ‘스승 사’자입니다. 의사라는 직업은 스승의 의미를 담고 있으니 사회 지도층으로서의 역할도 인정받은 사람들입니다. 사회의 잘못을 지적하고 올바른 길로 나갈 수 있도록 그 누구보다도 윤리와 규율과 겸손과 모범을 보여야하는 집단입니다.

따라서 의사의 가장 기본적인 본분인 ‘생명을 지키는 일’에 반하고 사회가 부여한 사회지도층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저버려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비틀린 의료제도와 규제에서 쉽게 적응하기 위해 ‘낙태시술’을 택하는 것보다는 힘들더라도 의사의 본분을 지키도록 노력하는 것이 이제 우리 산부인과 의사들이 선택해야할 길일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사회제도의 발전을 저해’하는 문제입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미혼모의 문제, 청소년 피임의 문제, 다자녀 저소득층의 문제, 일하는 여성들의 임신과 육아에 대한 문제, 싱글맘에 대한 문제, 장애아에 대한 문제들을 ‘낙태’라는 방법으로 그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왔습니다. 이런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보안하고 그런 처지에 있는 여성들을 도울 생각을 하기 보다는 개인적으로 산부인과를 찾아가서 낙태를 선택하게 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담당해야할 당연하 의무들을 망각하고 풀어야할 숙제라 생각조차 안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낙태시술이 만연화되고 보편화된다면 이런 여러 사회문제 복지문제는 신경쓰지 않아도 될 일, 필요하지도 않은 일로 계속 치부되어 이런 제도적 뒷받침의 필요성을 국가와 사회가 느끼지 못함으로서 계속 방치될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 산부인과 의사들은 ‘여성의 곤란한 처지를 해결한 준다’는 미명하에 사회가 담당하고 해결해야할 이런 복지 문제를 낙태로 해결함으로써 신경쓰지 않게 도와주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우리가 사회 발전을 저해시키는 주범이었던 셈입니다.

이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미혼모,청소년 임신, 저소득층, 워킹맘, 싱글맘, 장애아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책이 ‘낙태’가 아니라 근본적인 사회 시스템을 변혁시켜야한다는 것을 깨달아야합니다.

 

낙태는 필요악이 아닙니다.

낙태는 인간의 천성과 휴머니즘과 사회 공동체를 좀먹고 썩어들어가고 좀먹게 하는 ‘절대악’입니다.

지금까지 여성은 ‘낙태’라는 방법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도피하려 했고,

남성은 ‘낙태’라는 방법으로 자신의 성행위와 ‘아빠’로서의 책임을 벗어던지려 했고,

의사들은 ‘낙태’라는 방법으로 대한민국 의사로서 생존하려 발버둥을 쳤고,

사회는 ‘낙태’라는 방법‘으로 사회 문제들을 풀지 않고 눈감으려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낙태’시술을 더 이상 용인할 수도 없고, 선택의 문제로 받아들여서도 안됩니다. 어떤 생명도 그 존재 자체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그 어떤 임신도 사회가 존중해주고 도와주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