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이야기/성경 이야기

성경적 종말의 의미와 시한부 종말론의 사이비성

junihome 2009. 12. 19. 16:50

“말세야, 말세!” 어르신이 한숨 섞인 탄식을 합니다. 사람이 자라면서 한 번 쯤은 집안 어른이나 동네 어른을 통해서 들었던 말일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덧 나이가 들자 자신도 모르게 “요즘이야말로 말세네, 말세야!”하면서 혀를 끌끌 차게 됩니다. 조상 대대로 말세(末世)라고 했는데 왜 그 말세는 끝없이 지속될까요?

말세는 ‘시간적인’뜻이 아니라 ‘상황적인’뜻입니다. 시간적으로 종료가 가깝거나 종료의 때라는 뜻이 아니라, 상황이 올바르지 않고 왜곡이 심할 때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어느 고등학생이 중학생들이 하는 짓들을 보면서 “말세야.”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마찬가지의 의미로 ‘종말’이 사용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피조물 인간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여 사는 상황이 ‘종말적’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을 일컬어 ‘종말론적 신앙’이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종말의 모습을 보이는 불신자들의 세계 속에서 세상의 뜻과는 달리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들이 처한 상황은 항상 종말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기독교인들이 아무런 사회적 폐해를 끼치지 않고 도리어 사회에 기여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박해를 받았습니다. 특히 그 박해가 기독교인들을 말살시키려는 생명 위해(危害)의 급박한 상황일 때는 기독교인들은 종말적 상황과 함께 종말적 시각(時刻)도 느끼며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렇게 고초를 당하고 있으니 하나님께서도 역사를 곧 종료하실 것이다.”라는 고대(苦待)가 한 가닥 희망의 역할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바울도 로마 황제들의 극악한 기독교인 처형을 목격하면서 시기적으로도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때와 시기를 지정하거나 때와 시기를 가깝게 느낀다고 해서 유별난 행동의 변화를 지시하지는 않았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 분명히 때와 시기에 대해서는 언급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도 “인자가 올 징조가 하늘에서 나타날 터이니 세대가 얼마나 종말적인지 분별을 하면서 살아라. 그렇다고 해도 종말의 날과 종말의 시각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이 인자가 다시 올 때에도 그러할 것이다(마태복음 24:34-37).”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시각에 대해서는 정확한 정보를 알지 못하신다고 했는데 인간 중에 그 누가 시각을 논하는가? 그러므로 시한부 종말론(時限附 終末論)은 비성경적인 정도가 아니라 반성경적입니다.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사이비 지도자들이 시대별로 써먹었던 낡은 수법 중의 하나입니다.

이장림 목사가 이끌었던 다미선교회의 ‘1992년 10월 28일 휴거 소동’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TV에서 생중계까지 했지만 아무 일도 안 일어나고 해프닝으로 끝났습니다. 그러면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생각과 태도와 행동을 고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류의 강박적 교리는 중독성이 있어서 시한부 종말을 가르치는 사이비 종파에 몸을 담았다가 평범한 교회생활로 돌아가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1992년 10월 27일 다미선교회 밤 집회

 

21세기 첫 날 2000년 1월 1일이 되는 순간 지구의 종말이 온다는 1999년 12월 31일 시한부 종말론이 인기를 끈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또 시간은 여느 때와 똑같이 지나갔습니다. 근래에 두 번이나 연속으로 소동을 경험했으면 교훈을 얻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시한부 종말론의 재생은 끊임없이 계속될 것 같습니다. 2012년 12월 21일 인류도 사라지고 시간도 정지하는 무의 세계가 도래할 것이라고 새로운 시한부 종말론이 대두되었습니다. 이와 관련한 말세 대비용품이 미국에서는 많이 팔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2012년 종말을 예고하는 사람들은 이미 2003년 5월 종말을 예고했다가 빗나가서 다시 종말의 시각을 조정한 사람들입니다. 2012년 12월 21일도 아무 일 없이 지나가면 어떻게 될까요? 2029년, 2036년, 2068년 종말론이 대기표를 받고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참 신앙인은 호기심으로 살지 않고 진리를 따라 삽니다. 참 신앙인은 ‘그날’의 현상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상황에 관심이 있습니다. 참 신앙인은 하늘에서 벌어질 쇼를 넋 넣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오늘 자신이 실행해야 할 다큐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자신의 영적 상태가 예수님의 재림을 기쁘게도, 또는 당황스럽게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진정으로 소망하는 사람은 오늘 하루를 예수님의 제자답게 사는 데 집중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어떤 이에게는 그날이 도둑과 같이 덮치지는 않을 것이다(당황스럽지 않을 것이다)(살전 5:4).”라고 편지에 적은 것입니다.